[정규재 칼럼] 재벌 출생 시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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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년 8·3조치가 그룹 만들어내
재벌 때리기…경제 퇴행 불보듯
정규재 논설실장
재벌 때리기…경제 퇴행 불보듯
정규재 논설실장
한국의 재벌은 실은 정부가 만들어 냈다. 재벌 개혁에 두 팔을 걷어붙인 정치인이나 교수들도 이 사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대기업 재무담당 임원들도 마찬가지다. 옛일은 그렇게 잊혀져 간다. 한국 재벌만큼 출생연도가 분명한 나라도 없다. 다른 나라 재벌은 역사의 산물이지만 한국 재벌은 국가 정책의 산물이다. 재벌이 한국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 재벌인 스웨덴 발렌베리 그룹이나 버핏의 벅셔해서웨이도 거대한 재벌 체제다.
벅셔해서웨이는 금산분리 위반에, 출총제 위반에, 동네 제과점 커피점에, 상속세 회피를 위한 보험상품 판매에, 보석상에 이르기까지 실로 한국 재벌을 가볍게 넘어선다. 게다가 버핏은 1주에 120개가 넘는 의결권을 특권적으로 행사하는 차등의결권까지 갖고 있다.
한국 재벌은 1972년 8·3조치를 통해 태어났다. 어둡고 춥고 불온한 시기였다. 세계경제가 대침몰을 향해 달려가던 위험한 시기에 나중에 재벌이라고 부르게 되는 그런 존재가 태어났다. 출생부터가 운명적이었다. 미증유의 석유위기를 앞두고 숨죽이는 공포가 번져가던 그런 때였다. 일본과 독일의 고도성장이 파탄났고, 미국의 기축통화가 무너졌으며, 대인플레와 불황이 겹치면서 케인스 경제학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8·3조치는 개인 간 사채거래를 정부가 강제로 부인하거나 동결해버린 강폭하고 초법적인 조치였다. 5·16 이후 불과 10여년의 경제개발에 온갖 거품이 끓어 올랐고 기업들은 고리사채에 목이 짓눌려 수많은 기업가들이 자살로 내몰렸다. 은행에서 대출받는 것 자체가 특혜였고 사채금리는 미쳐 날뛰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아예 돈을 빌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거리에는 당연히 실업자와 거지들이 넘쳐났다. 정주영 회장조차 매일 피말리는 부도위기에 끌려들어갔다.
은행이 문을 닫는 시간에 긴급 발표된 8·3 사채동결조치 속에는 법인세법 개정안도 포함되었다.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바로 이 조항이 재벌을 만들어 냈다. 계열사를 많이 만들수록 그래서 계열사로부터 배당금을 많이 받을수록 세금을 적게내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투자금에는 감세혜택을 주고 배당금에는 아예 세액공제를 해주었다. 다음 해인 73년 미증유의 석유위기가 세계 경제를 덮쳤다. 그 난장판 속에서 한국 기업가들은 결사적으로 계열사에 투자했고 외자를 끌어와 미친듯이 기업을 만들어 냈다. 그렇게 폭풍우 속에서 재벌은 만들어졌다.
고리사채를 산업자금으로 전환시키는 역사적 전환에는 필연적으로 원초적 폭력이 수반되었다. 지금 우리가 10월 유신이라고 부르는 개발 독재는 그런 과정을 통해 경제성장 체제를 만들어 냈다. 거대한 모순 덩어리였다. 외자를 유치할 때는 국가에서 회계장부를 조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자산재평가는 10억원짜리 땅을 100억원이라고 뻥튀길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렇게 외자 100억원을 합쳐 200억원짜리 회사를 만들었다. 바로 그것이 맨주먹 알거지였던 한국이 일어선 비밀이다.
물론 역사에 가정은 없다. 그러나 8·3 조치가 없었더라면 재벌도 없고 고도성장도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대신 춥고 가난한 제3세계형 저개발 빈곤국이 얼굴에 땟국물을 한 채 국제원조에 의존해 생명줄만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북한이 그렇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구조적 특혜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 특혜라는 것도 국가의 제도였던 것이지 개별 기업에 배타적으로 주어진 부패형 특혜가 아니었다. 과거의 일로 오늘을 정당화할 수 없듯이 역사를 투쟁의 무기로 삼아서도 안된다.
그때의 8·3조치가 이례적인 고도성장을 만들어 냈다면 재벌을 혼내주자는 지금의 광풍은 아마도 이례적인 경제 퇴행을 만들어 낼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 전쟁이 끝나고 홀로 된 어머니는 몸을 팔아 아이들을 키웠다. 멋지게 자라난 자식들이 지금은 죽고 없는 엄마의 사진을 찢으며 그녀의 부정을 탓한다면 이는 과연 정당한 것인지.
정규재 논설실장 jkj@hankyung.com
벅셔해서웨이는 금산분리 위반에, 출총제 위반에, 동네 제과점 커피점에, 상속세 회피를 위한 보험상품 판매에, 보석상에 이르기까지 실로 한국 재벌을 가볍게 넘어선다. 게다가 버핏은 1주에 120개가 넘는 의결권을 특권적으로 행사하는 차등의결권까지 갖고 있다.
한국 재벌은 1972년 8·3조치를 통해 태어났다. 어둡고 춥고 불온한 시기였다. 세계경제가 대침몰을 향해 달려가던 위험한 시기에 나중에 재벌이라고 부르게 되는 그런 존재가 태어났다. 출생부터가 운명적이었다. 미증유의 석유위기를 앞두고 숨죽이는 공포가 번져가던 그런 때였다. 일본과 독일의 고도성장이 파탄났고, 미국의 기축통화가 무너졌으며, 대인플레와 불황이 겹치면서 케인스 경제학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8·3조치는 개인 간 사채거래를 정부가 강제로 부인하거나 동결해버린 강폭하고 초법적인 조치였다. 5·16 이후 불과 10여년의 경제개발에 온갖 거품이 끓어 올랐고 기업들은 고리사채에 목이 짓눌려 수많은 기업가들이 자살로 내몰렸다. 은행에서 대출받는 것 자체가 특혜였고 사채금리는 미쳐 날뛰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아예 돈을 빌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거리에는 당연히 실업자와 거지들이 넘쳐났다. 정주영 회장조차 매일 피말리는 부도위기에 끌려들어갔다.
은행이 문을 닫는 시간에 긴급 발표된 8·3 사채동결조치 속에는 법인세법 개정안도 포함되었다.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바로 이 조항이 재벌을 만들어 냈다. 계열사를 많이 만들수록 그래서 계열사로부터 배당금을 많이 받을수록 세금을 적게내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투자금에는 감세혜택을 주고 배당금에는 아예 세액공제를 해주었다. 다음 해인 73년 미증유의 석유위기가 세계 경제를 덮쳤다. 그 난장판 속에서 한국 기업가들은 결사적으로 계열사에 투자했고 외자를 끌어와 미친듯이 기업을 만들어 냈다. 그렇게 폭풍우 속에서 재벌은 만들어졌다.
고리사채를 산업자금으로 전환시키는 역사적 전환에는 필연적으로 원초적 폭력이 수반되었다. 지금 우리가 10월 유신이라고 부르는 개발 독재는 그런 과정을 통해 경제성장 체제를 만들어 냈다. 거대한 모순 덩어리였다. 외자를 유치할 때는 국가에서 회계장부를 조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자산재평가는 10억원짜리 땅을 100억원이라고 뻥튀길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렇게 외자 100억원을 합쳐 200억원짜리 회사를 만들었다. 바로 그것이 맨주먹 알거지였던 한국이 일어선 비밀이다.
물론 역사에 가정은 없다. 그러나 8·3 조치가 없었더라면 재벌도 없고 고도성장도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대신 춥고 가난한 제3세계형 저개발 빈곤국이 얼굴에 땟국물을 한 채 국제원조에 의존해 생명줄만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북한이 그렇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구조적 특혜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 특혜라는 것도 국가의 제도였던 것이지 개별 기업에 배타적으로 주어진 부패형 특혜가 아니었다. 과거의 일로 오늘을 정당화할 수 없듯이 역사를 투쟁의 무기로 삼아서도 안된다.
그때의 8·3조치가 이례적인 고도성장을 만들어 냈다면 재벌을 혼내주자는 지금의 광풍은 아마도 이례적인 경제 퇴행을 만들어 낼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 전쟁이 끝나고 홀로 된 어머니는 몸을 팔아 아이들을 키웠다. 멋지게 자라난 자식들이 지금은 죽고 없는 엄마의 사진을 찢으며 그녀의 부정을 탓한다면 이는 과연 정당한 것인지.
정규재 논설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