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견 철강업체(핫코일)가 달러가 아닌 원화로 잘못 신고하는 바람에 10억원 수출이 10억달러로 부풀려졌다는 게 관세청 해명이지만 최소한의 검증조차 하지 않았다는 건 말이 안된다. 핫코일의 연간 수출액이 30억~40억달러대에 불과한데 월간 기준으로 한 중견업체가 10억달러 수출을 신고했다면 뭔가 잘못됐다고 판단했어야 맞다. 그런데도 확정치 발표 때까지 몰랐다는 것은 그야말로 직무유기다. 관세청 집계를 그대로 믿고 수출액을 발표한 지경부도 수치에 무감각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러니 경기 판단도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정부는 물론 민간경제연구소까지 지난해 12월 속보치를 믿고 “수출이 예상보다 선전하고 있다”는 긍정적 전망을 내놨을 정도였다. 두 자릿수 수출증가율과 한 자릿수 수출증가율이 경기전망에서 갖는 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다. 수출입과 무역수지가 경제의 바로미터나 다름없는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결국 정부 신뢰를 실추시키고 경제운용에도 심각한 판단 착오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최근의 분위기로 보면 일회성 단순 실수라고 단정짓기도 어렵다. 지난 1월 말 청와대 회의에서 한 장관은 1월 무역수지 적자가 예상되니 손을 보자는 주장까지 폈다고 한다. 24개월 만의 적자인 만큼 충격이 없도록 숫자를 마사지하자는 얘기다. 정부 내에서 이런 황당한 꼼수나 찾으려 한다면 뭔가 구조적으로 잘못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다가 정부가 무슨 숫자를 내놓아도 믿지 못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그것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