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면 통증을 못 느끼게 수술을 받아 인간병기로 탈바꿈한 ‘무적 병사’가 가끔 나온다. 총을 맞아도 끄떡없고 팔다리가 잘려도 전진하는 무시무시한 병사가 있을 수 있을까.

통증은 몸이 손상될 때 겪는 고통스런 감각이다. 열이나 타격, 총상 등 강한 기계적 자극이 피부나 근육 등에 전해지면 감각신경 말단이 전기적으로 흥분한다. 전기신호(활동전압)는 척수를 통해 대뇌로 전달된다. 간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상(視床·thalamus)은 이 신호를 중계해 대뇌피질의 감각중추로 전달하고, 이때 우리는 통증을 느끼게 된다. 신호가 크면 클수록 통증의 강도도 커진다.

예를 들면 고추의 매운 성분인 캡사이신은 세포막에 있는 특정 이온채널(칼슘 나트륨 이온 등이 오가면서 농도차를 일으켜 전기신호를 중개하는 통로)을 연다. 이때 감각신경세포가 탈분극되면서 전기적으로 이상상태에 빠진다. 이를 ‘흥분 상태’라고 한다. 속칭 ‘캡사이신 채널’로 불리는 이 이온채널은 열 자극에 의해서도 열린다. 캡사이신 성분 약을 바르면 아프면서 동시에 화끈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통증 전달로는 한 개가 아니라 무수히 많다. 이 전달로를 억제하면 진통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먼저 감각신경말단의 이온채널이 유해자극에 반응해 열리는 것을 차단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자극에 따라 채널의 반응이 각각 다른 만큼 이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오우택 서울대 약대 교수는 “이온채널은 수많은 유사채널을 만들어내며, 이에 대한 활성과 생리적 특성을 연구하면 새로운 통증 억제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통증을 못 느끼며 전장에서 활개치는 병사를 만들기란 어려운 얘기다. 모르핀이나 암페타민 등을 대량 투여해 환각 상태에서 통증을 못 느끼게 할 수는 있다. 설령 척수에 있는 신경을 다 꺼내서 전달로를 다 막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운동능력이 마비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또 특정 통증을 멈추게 하면 돌발상황이 올 수 있다. 예를 들면 극심한 고통을 호소해 전두엽과 두정엽 사이를 손본 환자가 수술 후 해당 고통은 잠잠해졌지만, 성격이 완전히 변해버린 사례도 있다.

수많은 통증 가운데 유령통증(환지통)도 기이한 현상 중 하나다. 외상 당뇨 등으로 손발 등 몸의 특정 부위를 절단한 환자가 이미 없어져버린 절단부위에대한 통증을 계속 호소하는 것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