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저축은행의 '특별법 유구무언'
“고객에게 손실을 끼친 주범이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유구무언입니다.”

저축은행중앙회 고위 관계자가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부실 저축은행 지원 특별법’을 두고 자조섞인 말투로 뱉은 말이다. 5000만원 초과 예금자는 물론 후순위채 투자자의 손실까지 감싸주는 이번 특별법은 예금자보호법을 무력화시켜 금융질서를 뒤흔들고 헌법정신까지 훼손한다는 등의 이유로 사회 각계에서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이렇다 저렇다 말 한마디가 없다. 저축은행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중앙회조차 그 흔한 보도자료 한 번 내지 않고 입을 꾹 닫고 있다. 할 말이 없는 것 같지는 않다. 기사화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는 “말도 안되는 법이고 난센스”라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공식적인 코멘트는 한사코 거부했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속내에는 업계 이기주의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금융시장과 시장경제 시스템을 생각하면 반대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저축은행 이용자들이 피해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구제받는 상황을 반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피해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여전히 저축은행 이용자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특별법을 찬성할 수도, 그렇다고 반대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아예 ‘노 코멘트’를 선택한 저축은행 업계의 입장은 일견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소탐대실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업계의 무대응은 우려스럽다. 무엇보다 시장경제를 수호하려는 의지 박약이 드러나며, 책임있는 금융업권으로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평판이 좋지 못한 저축은행들이다. 자기 이해관계에 함몰돼 소신을 밝히지 못한다면 향후에 어떤 일을 맡길 수 있겠는가.

업계 스스로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도 무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른 금융업권에서 갹출한 돈(예금보호기금 특별계정)을 저축은행 피해자 구제에 사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사용한다고 해도 언제가는 저축은행이 고스란히 채워넣어야 한다. 게다가 다른 부실 저축은행 피해자들도 형평성을 따지며 들고 일어나면 감당하기 힘들다.

저축은행 업계는 이제라도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부실에 따른 고객 피해보다 지금의 침묵이 더 씻지 못할 과오로 남을 수 있다.

박종서 경제부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