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서 연구책임자 조작…출연硏 '먹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특정 연구자의 연구성과를 엉뚱한 사람 것으로 둔갑시켜 물의를 빚고 있다.

전남대 로봇연구소(소장 박종오 기계시스템공학부 교수)는 “KIST가 발표한 연구성과 내용을 즉시 시정하고 허위발표 당사자를 징계할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전남대 총장 명의로 KIST에 보냈다”고 10일 발표했다.

사건은 KIST가 지난 8일 대장내시경 로봇시스템 기술을 100만유로(15억원)에 이탈리아 의료장비업체 ERA 엔도스코피사에 이전한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이 기술은 기존 대장내시경과 달리 자벌레가 움직이듯 꼬불꼬불 대장 안을 움직여 통증과 부작용을 크게 줄인 것으로 학계에서 알려져 있다. KIST는 이 기술의 연구총괄책임자 및 주도자로 김태송 바이오마이크로시스템연구단 책임연구원을 명시했다.

그러나 이 기술은 2001년 당시 KIST에 재직 중이던 박종오 교수가 ‘지능형 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단’을 이끌며 개발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교수는 김병규 당시 KIST 연구원(현 항공대 교수), 이탈리아 성안나고등과학원(SSSA) 연구팀 등과 함께 개발, 2005년 RA 엔도스코피사와 기술이전 가계약을 마쳤다. 7년이 지난 최근에야 정식 기술특허 이전이 이뤄진 것은 성능 및 안전성 등에 대한 검증 기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KIST서 연구책임자 조작…출연硏 '먹칠'
박 교수는 “김태송 씨는 당시 사업단 소속이었지만 이 연구프로젝트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며 “김병규 연구원보다 나이가 많아 관례상 (이 기술의) 하부과제 책임자로 이름을 넣어줬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의 연구 업적을 자신의 것인양 가로채 발표하는 것은 심각한 연구윤리 위반”이라면서 “백번 양보해 (김씨가) 조금이라도 연구에 기여했다면 과거 몸담았던 기관을 생각해 이렇게 대응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KIST는 공식자료를 내고 “이 기술에 관한 특허는 KIST가 보유하고 있고 이번 계약은 특허 양도이며 박종오 교수는 발명자에 포함돼 있지 않다”며 “연구윤리 위반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관례상 연구원이 출연연구소에 소속돼 연구성과를 내면 해당 특허는 모두 연구소에 귀속된다. 박 교수는 “특허를 갖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연구 책임자를 완전히 왜곡하는 것이 문제”라고 재반박했다.

김태송 연구원은 “사업단장이 바뀌면 이전 사업의 연구 결과는 현재 단장 명의로 발표하는 관례에 따른 것”이라며 “자료를 내는 과정에서 무리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김 연구원은 박 교수 후임으로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사업단장을 2004년 11월부터 맡고 있다.

과학기술계에서 연구성과를 누가 주도했느냐를 두고 싸우는 일은 드물지 않다. 주도권을 누가 갖느냐에 따라 향후 이득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에는 수소 저장용 마그네슘 복합체 연구개발 성과를 두고 울산대와 울산과기대(UNIST)가 각자 보유한 연구진이 주도했다며 다툼을 벌였다. 과학계 한 관계자는 “출연연구소 법인통합 반대 등 과학계 이기주의가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