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초가삼간 태울 재벌 개혁
재벌이 동네북이다. 선거철이면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재벌 개혁이 이번에는 좀 심각하다. 한국의 재벌, 일본의 게이레쓰는 계열기업들로 구성된 기업집단을 의미한다. 나라마다 역사적 배경과 특성이 다르기는 하지만 미국도 GE, ITT, 버핏의 벅셔 해서웨이 등 예외는 아니다. 최근에는 중국 인도 동남아의 기업집단들이 무섭게 추격해 오고 있다.

기업집단이 생겨나는 이유를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영국의 로널드 코스는 기업집단 내부거래비용이 시장 외부거래비용보다 적은 데서 찾고 있다. 예를 들어 소모품을 집단 내 계열기업에서 조달하는 비용이 시장에서 조달하는 비용보다 적을 경우 소모품 공급 계열사가 생긴다는 것이다. 시장거래비용이 아주 적다면 계열기업이 필요 없어져 기업은 핵심 분야에만 전문화한다는 것이다. 또 외부자본시장이 발달돼 있지 않거나 자금조달 비용이 비쌀 경우 계열기업 간 자금 조달이 유리하기 때문에 기업집단이 존속된다는 내부자본시장이론도 있다. 다음으로는 ‘계란을 한 꾸러미에 담지 않는다’는 격언처럼 기업도 불확실성이 큰 경영환경 속에서 전문화보다는 다각화를 통해 투자위험을 분산시키고자 한다. 전문화가 좋은지 다각화가 좋은지는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이외에도 기업이 너무 커져 비효율적이 되면 경영 효율화를 위한 분사로 계열기업이 늘어나기도 한다.

기업집단의 주요 특징은 소수 지배주주가 출자로 계열기업을 소유하는 소유구조, 소수 지배주주가 중요 사안을 결정하는 지배구조, 상호지급보증으로 연결된 재무구조 등이다. 이 가운데 한국은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자본시장 개방으로 지배주주의 지분율이 3% 내외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소유구조가 완전히 바뀌었다. 외국인 지분율이 절반을 넘는 대기업들이 허다하다. 적대적 인수·합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실정이다.

지배구조도 사외이사와 감사위원회 도입, 소수주주권 강화 등으로 불완전하지만 개선됐다. 준법지원인제도 도입된다. 상호지급보증은 완전히 해소됐고 결합재무제표도 작성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재벌은 외환위기 전과는 상당히 다른 구조다. 한 가지 남아 있는 중요한 제도가 순환출자구조다. 지배주주는 적은 지분을 가지고도 순환출자로 계열기업들을 장악하고 있다.

이번에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많은 재벌개혁정책들이 주장되고 있지만 핵심은 계열 축소 내지는 해체와 중소기업 보호다. 계열 축소를 위해 재벌세 도입,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 규제 강화가 주장되고 있고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중기적합업종 지정, 하도급법 개정, 소모성 자재구매 대행(MRO) 축소, 일감 몰아주기 과세, 상생법, 협력이익배분제, 동반성장기금 출연 등이 도입되고 있다.

가장 파괴력이 큰 것이 재벌세와 순환출자 금지다. 재벌세는 계열사의 배당금에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로 계열구조가 자회사 손자회사 등으로 다층화될수록 남는 것이 없게 돼 결국은 다층 계열구조가 없어지게 될 전망이다. 이런 계열구조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제도가 순환출자 금지다. 계열기업 간 상호출자는 이미 금지돼 있고 다층 계열회사도 안 되기 때문에 결국 한국 재벌은 전문화되거나 지주회사 형태로 크게 축소 또는 재벌 자체가 해체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그간 저비용의 내부거래나 내부자본시장을 이용해 오던 한국 기업들이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또 계열이 축소되고 진출업종은 제한되며 고용도 할당받으면서 남는 이익은 나눠 가져야 한다고 할 때 투자가 얼마나 이뤄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일자리 창출과 성장동력 확충이 시급한 때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굳이 개혁의 방향을 잡고자 한다면 재벌의 경쟁력은 유지하면서 총수 일가의 독단과 전횡을 방지하는 쪽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오정근 < 고려대교수·경제학 / 국제금융학회장 ojunggun@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