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참, 어이가 없어서….”

글로벌 회계법인의 일본지사에 근무하는 A사장이 한 모임에서 최근 겪은 일을 들려줬다. 그는 도쿄로 발령받은 이후, 기업 회계파트에서 근무하는 한 일본인 직원을 눈여겨 봤다. 싹싹하고 판단이 빨랐다. 일부러 몇 가지 일을 던져주며 테스트도 했다. 결론은 “한번 키워줘야겠다”는 쪽으로 내려졌다.

며칠 전 사무실로 그 직원을 불렀다. 해외근무 발령을 낼 테니 준비하고 있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좋아할 줄 알았다. 그런데 표정이 예상 밖이었다.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다음날 사장실로 찾아온 그의 손엔 사표가 들려 있었다. 굳이 고생하며 해외에서 근무하느니 회사를 옮기겠다는 말과 함께.

옆에서 듣고 있던 일본 사립대의 K교수도 맞장구를 쳤다. 그의 고민은 고3 딸이었다. 대학 선택을 놓고 요즘 의견차가 심하다고 했다. K교수는 딸이 한국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대학원은 미국으로 가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10년 이상 일본에서 산 경험에 한국과 미국의 졸업장을 녹이면 글로벌 시대에 적합한 인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싫어요’였다. “익숙한 일본을 떠나 왜 사서 고생해야 하느냐”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일본에 너무 오래 살았나 보다”며 한탄했다. ‘초식남·초식녀’들이 많은 일본에서 지내다보니 딸의 꿈도 쪼그라들었다는 후회였다.

[취재수첩] 꿈이 작아지는 일본 젊은이
50대 일부 기성세대의 삐딱한 시선에 불과한 것일까.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의 대학에 유학 온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최근 설문조사를 했다. 질문은 일본에 부족한 것이 무엇이냐는 것.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답은 일본 젊은이들의 ‘헝그리 정신’. 그 다음은 ‘사회 전반의 활력’이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 눈에 비친 일본 청년들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왜 그럴까. 오쿠 마사유키 미쓰이스미토모금융그룹 회장은 작년 말 중국 칭화대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일본 젊은이들이 태어나서부터 성장을 경험하지 못해 적극적으로 도전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장기화된 저성장이 젊은이들의 꿈을 갉아먹어 버렸다는 해석이다. ‘복지’라는 아젠다에 밀려 ‘성장’이라는 화두가 점점 힘을 잃어가는 요즘의 한국.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 아닐까.

안재석 도쿄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