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 전통 깬 '와인의 혁신가'…지역마다 좋은 포도 골라 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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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Practice] 美 와인 제조사 '켄달 잭슨'
작황 상관없이 일정 품질 유지…최근 10년간 美 판매량 1위
사람 이름으로 제품명 정해 발음 어려운 유럽산과 차별화…중간 가격대로 '매스티지' 개척
토지 매입 - 포도 생산 - 제조
기존 방식 버리고 와인 먼저 생산…수익으로 더 많은 땅 사들여
작황 상관없이 일정 품질 유지…최근 10년간 美 판매량 1위
사람 이름으로 제품명 정해 발음 어려운 유럽산과 차별화…중간 가격대로 '매스티지' 개척
토지 매입 - 포도 생산 - 제조
기존 방식 버리고 와인 먼저 생산…수익으로 더 많은 땅 사들여
혁신은 기존 통념을 깨면서 시작된다. 미국의 와인 제조업체 켄달 잭슨은 수백년 동안 이어져온 와인 제조 방식을 바꿔 성공한 기업이다. 와인업계에서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켄달 잭슨은 ‘와인은 포도 생산지가 중요하다’는 전통을 거부했다. 대신 여러 지역에서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만들었다. 또 토지를 확보한 뒤 포도 농사를 지어 와인을 생산하는 전통적 방식도 버렸다. 남들이 수확한 포도를 사와 와인을 만들어 돈을 번 뒤 토지를 구매하는 ‘역선택’을 한 것이다. 켄달 잭슨은 전통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사업을 벌인 덕분에 30년이란 짧은 시간에 미국 최대 와인 생산업체가 됐다.
○와인 먼저 생산한 뒤 부지 매입
미국 부동산 전문 변호사였던 제스 잭슨은 50대였던 1982년 와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1975년 사들였던 작은 과수원에 포도를 심으며 와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와인을 대량 생산하기에는 잭슨이 갖고 있는 땅이 너무 작았다. 유럽의 와인 제조업체들은 땅을 먼저 확보하고 우수한 품종의 포도를 심은 뒤 이를 수확해 와인을 생산한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볼 때 잭슨이 더 많은 땅을 확보하는 게 순서였다.
하지만 그는 이 방식은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판단했다. 포도 나무를 길러 수확하는 데만 3~5년이 걸리고, 땅을 사려면 많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와인 제조 전문가들을 영입한 뒤 이들과 질 좋은 포도를 생산하는 농장을 찾아다녔다. 이들과 공급 계약을 맺은 뒤 와인을 만들어 팔았다. 잭슨이 와인 사업에 뛰어든 지 1년 만인 1983년부터 ‘켄달 잭슨 빈트너스 리저브 샤도네이’를 출시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 와인은 출시된 해에 미국 와인 경연대회에서 2관왕을 차지하며 인기를 끌었다. 프랑스까지 가 오크통을 사오는 등 발품을 판 결과다. 잭슨은 빈트너스 리저브 샤도네이를 팔아 번 돈으로 토지를 매입해 더 많은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현재 켄달 잭슨의 농장 규모는 1만4000에이커에 이른다. 양조장도 10여개로 늘었다.
켄달 잭슨의 연간 생산량은 1992년 100만상자(12병들이)를 돌파했고 지난해 500만상자로 늘었다. 가장 많은 와인을 생산하는 미국 업체가 됐으며 연간 매출 5억달러 정도로 10년 가까이 미국 내 판매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러 농장 포도 섞어서 제조
잭슨은 와인 생산지를 중시하는 업계의 오랜 관행에도 얽매이지 않았다. 샤토마고, 로마네콩티 등 유명 프랑스 와인 브랜드명이 포도원 이름에서 따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유럽 와인업체들은 한 지역에서 나온 포도로만 와인을 만든다.
하지만 잭슨은 포도를 생산한 지역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동일 품종의 포도를 여러 지역에서 재배해 이를 섞어 와인을 만드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같은 지역에서 생산한 포도로만 와인을 만들 경우 특정 연도에 강수량과 일조량이 좋지 않다면 그해 출시된 와인은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잭슨은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 레이크카운티, 소노마 등에서 농장을 구입한 뒤 여러 지역에서 생산한 포도를 섞어 와인을 만들었다. 그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토양의 성질, 일조량, 배수 조건 등을 조사해 포도밭의 등급을 매겼다. 이 때문에 켄달 잭슨 와인은 생산연도에 좌우되지 않고 일정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다. 소비자들이 ‘켄달 잭슨 와인을 선택하면 품질에 실망할 우려가 적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다.
자신의 성과 부인의 처녀 때 성(켄달)을 따 와인 이름을 켄달 잭슨으로 정한 것도 새로운 시도였다. 이는 미국인들이 기억하고 발음하기 쉬운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생산지를 상품명으로 한 유럽 와인들과 차별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매스티지 시장 개척
켄달 잭슨이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차별화한 가격 정책이다. 잭슨이 사업을 시작했을 때 미국 와인 시장은 수백달러를 호가하는 유럽산 고급 와인과 10달러 안팎의 저가 와인으로 양분돼 있었다.
켄달 잭슨은 저가와 고가 사이의 중간 가격대 와인을 주력 상품으로 삼았다. 이 때문에 켄달 잭슨 와인 중에는 30달러대짜리 제품이 많다. 켄달 잭슨은 와인 시장에도 ‘매스티지(masstige·대중적인 명품)’ 열풍을 몰고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와인을 많이 마시지 않던 젊은층이 켄달 잭슨의 주요 고객으로 떠오른 것도 매스티지 마케팅의 성과였다.
켄달 잭슨은 매스티지 와인 외에 5달러짜리 저가 와인, 100달러를 넘는 고급 와인도 생산하며 제품 가격을 3단계로 세분화했다. 켄달 잭슨이 캘리포니아에 대규모 농장을 갖췄기 때문에 가능한 가격 시스템이다.
켄달 잭슨 와인은 가격에 비해 품질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대한항공 등 미국에 취항하는 주요 항공사 퍼스트클래스용 와인으로 공급되고 있다. 미국 최고 권위의 와인 잡지인 ‘와인 앤드 스피리트’는 1987년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총 10번에 걸쳐 켄달 잭슨을 ‘올해의 와인’으로 선정했다. 와인 애호가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즐겨 마시는 와인도 켄달 잭슨인 것으로 알려졌다.
켄달 잭슨 창립자인 제스 잭슨은 지난해 4월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미국 경제주간지 포브스는 그의 재산 규모를 18억달러 이상으로 추정하며 ‘미국 400대 부호’에 포함시켰다. 잭슨의 딸인 줄리아(24)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고, 릭 타이그너 대표가 그를 보좌하고 있다. 타이그너 대표는 “앞으로 와인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을 공략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켄달 잭슨은 ‘와인은 포도 생산지가 중요하다’는 전통을 거부했다. 대신 여러 지역에서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만들었다. 또 토지를 확보한 뒤 포도 농사를 지어 와인을 생산하는 전통적 방식도 버렸다. 남들이 수확한 포도를 사와 와인을 만들어 돈을 번 뒤 토지를 구매하는 ‘역선택’을 한 것이다. 켄달 잭슨은 전통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사업을 벌인 덕분에 30년이란 짧은 시간에 미국 최대 와인 생산업체가 됐다.
○와인 먼저 생산한 뒤 부지 매입
미국 부동산 전문 변호사였던 제스 잭슨은 50대였던 1982년 와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1975년 사들였던 작은 과수원에 포도를 심으며 와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와인을 대량 생산하기에는 잭슨이 갖고 있는 땅이 너무 작았다. 유럽의 와인 제조업체들은 땅을 먼저 확보하고 우수한 품종의 포도를 심은 뒤 이를 수확해 와인을 생산한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볼 때 잭슨이 더 많은 땅을 확보하는 게 순서였다.
하지만 그는 이 방식은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판단했다. 포도 나무를 길러 수확하는 데만 3~5년이 걸리고, 땅을 사려면 많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와인 제조 전문가들을 영입한 뒤 이들과 질 좋은 포도를 생산하는 농장을 찾아다녔다. 이들과 공급 계약을 맺은 뒤 와인을 만들어 팔았다. 잭슨이 와인 사업에 뛰어든 지 1년 만인 1983년부터 ‘켄달 잭슨 빈트너스 리저브 샤도네이’를 출시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 와인은 출시된 해에 미국 와인 경연대회에서 2관왕을 차지하며 인기를 끌었다. 프랑스까지 가 오크통을 사오는 등 발품을 판 결과다. 잭슨은 빈트너스 리저브 샤도네이를 팔아 번 돈으로 토지를 매입해 더 많은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현재 켄달 잭슨의 농장 규모는 1만4000에이커에 이른다. 양조장도 10여개로 늘었다.
켄달 잭슨의 연간 생산량은 1992년 100만상자(12병들이)를 돌파했고 지난해 500만상자로 늘었다. 가장 많은 와인을 생산하는 미국 업체가 됐으며 연간 매출 5억달러 정도로 10년 가까이 미국 내 판매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러 농장 포도 섞어서 제조
잭슨은 와인 생산지를 중시하는 업계의 오랜 관행에도 얽매이지 않았다. 샤토마고, 로마네콩티 등 유명 프랑스 와인 브랜드명이 포도원 이름에서 따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유럽 와인업체들은 한 지역에서 나온 포도로만 와인을 만든다.
하지만 잭슨은 포도를 생산한 지역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동일 품종의 포도를 여러 지역에서 재배해 이를 섞어 와인을 만드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같은 지역에서 생산한 포도로만 와인을 만들 경우 특정 연도에 강수량과 일조량이 좋지 않다면 그해 출시된 와인은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잭슨은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 레이크카운티, 소노마 등에서 농장을 구입한 뒤 여러 지역에서 생산한 포도를 섞어 와인을 만들었다. 그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토양의 성질, 일조량, 배수 조건 등을 조사해 포도밭의 등급을 매겼다. 이 때문에 켄달 잭슨 와인은 생산연도에 좌우되지 않고 일정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다. 소비자들이 ‘켄달 잭슨 와인을 선택하면 품질에 실망할 우려가 적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다.
자신의 성과 부인의 처녀 때 성(켄달)을 따 와인 이름을 켄달 잭슨으로 정한 것도 새로운 시도였다. 이는 미국인들이 기억하고 발음하기 쉬운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생산지를 상품명으로 한 유럽 와인들과 차별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매스티지 시장 개척
켄달 잭슨이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차별화한 가격 정책이다. 잭슨이 사업을 시작했을 때 미국 와인 시장은 수백달러를 호가하는 유럽산 고급 와인과 10달러 안팎의 저가 와인으로 양분돼 있었다.
켄달 잭슨은 저가와 고가 사이의 중간 가격대 와인을 주력 상품으로 삼았다. 이 때문에 켄달 잭슨 와인 중에는 30달러대짜리 제품이 많다. 켄달 잭슨은 와인 시장에도 ‘매스티지(masstige·대중적인 명품)’ 열풍을 몰고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와인을 많이 마시지 않던 젊은층이 켄달 잭슨의 주요 고객으로 떠오른 것도 매스티지 마케팅의 성과였다.
켄달 잭슨은 매스티지 와인 외에 5달러짜리 저가 와인, 100달러를 넘는 고급 와인도 생산하며 제품 가격을 3단계로 세분화했다. 켄달 잭슨이 캘리포니아에 대규모 농장을 갖췄기 때문에 가능한 가격 시스템이다.
켄달 잭슨 와인은 가격에 비해 품질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대한항공 등 미국에 취항하는 주요 항공사 퍼스트클래스용 와인으로 공급되고 있다. 미국 최고 권위의 와인 잡지인 ‘와인 앤드 스피리트’는 1987년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총 10번에 걸쳐 켄달 잭슨을 ‘올해의 와인’으로 선정했다. 와인 애호가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즐겨 마시는 와인도 켄달 잭슨인 것으로 알려졌다.
켄달 잭슨 창립자인 제스 잭슨은 지난해 4월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미국 경제주간지 포브스는 그의 재산 규모를 18억달러 이상으로 추정하며 ‘미국 400대 부호’에 포함시켰다. 잭슨의 딸인 줄리아(24)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고, 릭 타이그너 대표가 그를 보좌하고 있다. 타이그너 대표는 “앞으로 와인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을 공략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