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후반전에 빛나는 사람들
전설적인 헤비메탈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의 내한 공연이 열린 지난 주말 저녁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율 브린너를 닮은 맨머리의 롭 핼포드는 첫 곡 ‘래피드 파이어’부터 폭발적인 샤우팅으로 객석을 휘어잡았다. 그가 “안녕하세요, 여러분. 주다스 프리스트가 돌아왔습니다. 준비됐습니까”라고 묻자 4000여 관객은 괴성을 내지르며 한호했다.

그도 한 땐 無名 기사였다

그는 주다스 프리스트를 상징하는 삼지창 모양의 종이 피켓과 밴드 이름을 적은 깃발을 휘둘렀다. ‘헤딩 아웃 투 더 하이웨이’ ‘네버 새티스파이드’ 등에 이어 금속성의 빠른 사운드가 공연장을 흔들어댔다. 17곡의 본공연이 끝난 뒤 무대 뒤로 들어갔던 그가 오토바이를 타고 무대에 다시 등장하자 올림픽홀은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청중은 두 손을 치켜들고 리듬에 맞춰 펄쩍펄쩍 뛰며 밴드 멤버들을 따라 헤드뱅잉(머리 돌리기)을 했다. 그야말로 ‘헤비메탈의 원조’다운 무대였다.

롭 핼포드는 올해 61세다. 그룹 멤버들도 대부분 50~60대. 인생 후반전을 이렇게 뜨겁게 장식하는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그것은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정신에서 비롯된 꿈의 결집체였다. 40년 전 이름 없는 무대 조명기사에서 ‘메탈의 신(神)’ 반열에 오른 그의 눈빛이 더욱 빛나는 이유도 이것이다. 주다스 프리스트의 40년 역사를 유감없이 보여준 이들은 남은 월드투어를 마친 뒤 또 다른 앨범 작업에 들어간다고 했다.

올해 101세를 맞은 일본의 ‘할머니 시인’ 시바타 도요는 어떤가. 열 살 때 집안이 기울어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더부살이를 해야 했던 그는 20대에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그러다 서른세 살에 다정한 요리사 남편을 만나 외아들을 낳고 재봉일 등 부업을 하며 알뜰하게 생활을 꾸렸다. 반세기 가까이 함께 산 남편을 81세 때 먼저 보내고난 뒤 그는 새로운 꿈을 꿨다. 90세에 아들의 권유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99세가 되던 해인 2010년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펴냈을 때 그 앞에 놀라운 일들이 펼쳐졌다. 이 시집은 입소문을 타고 150만부나 팔리며 초베스트셀러가 됐다. 얼마 전에 펴낸 두 번째 시집 《100세》는 사전주문만 30만부를 넘었다.

그는 평범한 언어로 사람들에게 얘기를 건네듯 시를 쓴다. 일본 열도를 전율시킨 대지진의 아픔도 자신의 일생과 함께 녹여낸다. ‘어머니에게 바느질을/배웠습니다/배우자에게는 인내를/배웠습니다/아들에게는 시 쓰는 것을/배웠습니다/모두 나에게/도움이 되었습니다//그리고 지금/인생의 마지막에/사람의 상냥함을/지진을 통해 배웠습니다//살아 있어 좋았습니다.’(‘배우다’ 전문)

80세에 JAL 살린 이나모리

이뿐만이 아니다. 며칠 전 하나금융그룹 초청으로 방한한 이나모리 가즈오(80)는 78세에 빚투성이의 일본항공(JAL) 구원투수를 맡아 14개월 만에 회생시켰다. 65세에 KFC의 첫 체인점을 열었던 ‘지팡이 할아버지’ 커넬 샌더스도 그렇다. 허기를 달래려 닭고기 요리 샘플을 뜯어먹으며 1000여차례나 문전박대를 당하다 마침내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창립에 성공했다. 밀크셰이크 믹서기 외판원이었던 리에 크록은 53세에 맥도날드를 창업했다.

베이비부머 730만명의 대량 퇴직을 앞둔 우리 사회에 더 필요한 ‘인생 2막’ 성공 사례들이다.

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