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눈빛 나누기
지난달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 해마다 하는 그룹경영진의 신년회의라 설 연휴임에도 빠질 수 없어 출장길에 올랐다. 이맘때 미국 동부는 늘 혹한이고, 작년의 경우는 2가 넘는 폭설로 교통은 물론 도심 기능까지 마비되는 그런 날씨였다. 그런데 올해는 아주 따뜻해서 영상 12도를 웃도는 기온으로 반바지를 입고 조깅하는 사람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은 55년 만에 온 혹한이 연일 이어지고, 유럽은 수백명의 사람이 동사(凍死)하는 기변이 일어났다고 한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빨라진 세계화로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제는 안방에서 보게 됨에 따라 이런 변화를 쉽게 알 수 있게 됐다. 너무 많은 정보와 소식으로 때로는 머리가 아플 지경이지만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미국 출장을 가면 아침 조찬회의부터 저녁만찬까지 일정이 빡빡하게 이뤄지지만 아무리 뛰어난 정보통신 기술이라도 얻기 어려운 정보나 교감을 직접 얻게 되므로 피곤함도 모르고 뛰어다니게 된다. 즉, 휴대폰이나 컴퓨터로 이메일이나 화상통화를 아무리 자주 했어도 할 수 없는 것들을 직접 대면해 해결하고, 인간적으로 통하는 대화를 하는 것이다.

요즘 식당이나 카페에서 친구나 연인들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서로 대화는 않고 각자 휴대폰을 들고 열중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대면해 말하는 것을 어색해 하기 시작한 것 같다.

지난 연말 한 송년모임에서 재밌는 모습을 봤다. 초대받아 온 몇 명의 젊은 친구들은 같이 어울려 말하고 있으면서도 상대방의 눈을 보고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은 그곳에 있었지만 눈과 손은 휴대폰에서 다른 곳에 있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마주앉은 사람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또 한번에 몇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하는데 제대로 진정성을 가지고 대화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휴대폰과 컴퓨터로 잠시도 쉬지 않고 많은 대화를 하는 요즘, 정말 우리가 꼭 해야 하고 나눠야 하는 것들이 얼마나 될까. 그렇다고 그런 문명이 없던 시대로 돌아가자는 얘기는 아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포털이 없던 시대를 이제는 상상도 할 수가 없게 됐다. 그러나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친구관계에서도 얼굴 마주하고 표정 보며 얘기하는 시간보다 와이파이를 통한 연결에 더 익숙해 지고 있다는 사실이 어째 좀 삭막하다.

학교 폭력 얘기가 많이 나오는 요즘, 직장을 다니는 워킹맘들은 심기가 편치 않다고 한다. 어떤 것보다 자녀교육에 효과적인 것이 부모가 자녀와 하루 30분 같이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눈빛을 나누는 것에 인색함이 없는 대화가 서로에게 더 큰 사랑을 만들어 주지 않을까….

이행희 < 다국적기업최고경영자협회장 leehh@corni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