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무역적자 발표前 서별관에서 무슨일이…
“경제는 심리다.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무슨 소리냐. 실상을 있는 그대로 알려야 한다.”

지난달 마지막주 열린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경제당국 수장들은 1월 무역수지 예상치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청와대 영빈관 인근의 안전가옥에서 열리는 서별관회의는 최고위 정책협의회로 ‘경제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다. 이날 회의에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김석동 금융위원장,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 김대기 경제수석 등이 참석했다.

◆2년 만에 무역적자 어떻게…

지경부는 이날 ‘1월1일부터 20일까지 무역수지가 29억달러 적자이고, 상황을 감안할 때 월간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고했다. 적자가 나면 월간 기준으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년 만이다.

한 참석자가 입을 열었다.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감안해 ‘손을 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 경제를 지켜온 유일한 버팀목이 수출이었는데, 이마저 흔들릴 경우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경제는 심리에 크게 좌우되는데 갑자기 흑자행진이 멈추고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하면 사회 분위기만 나빠질 수 있다”는 요지였다.

1월 수출은 대체로 좋지 않다. 전년도 연말에 밀어내기 수출을 한 후유증이 1월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수출 선적을 최대한 앞당기고 수입 선박입항은 최대한 지연시키는 방법 등이 실제로 외환위기 직후 동원되기도 했다.

곧바로 반론이 제기됐다. 다른 참석자는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라며 “국민들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숫자를 숨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들이 ‘경제가 정말 심각해지는구나’라고 느끼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반박했다. 상황이 나쁘더라도 있는 그대로 얘기하고,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전기도 아껴 쓰도록 상황을 납득시켜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위기를 정치권 견제 기회로”

선거를 앞두고 불안심리가 확산되는 것이 정부에 유리할 게 없다는 얘기도 나왔다. 다시 논쟁이 붙었다. 한 참석자는 “지금이 위기상황이라는 인식을 (국민이)확실하게 갖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소비여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내수가 어려워지는데, 수출에 기댈 수도 없다는 상황의 심각성을 알 수 있도록 ‘예방주사’를 놔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정공법을 쓰자는 것이다.

또 다른 참석자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유럽까지 박살이 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안 그런 것처럼 보이니까 정치권에서 딴 얘기만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여야 구분 없이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데 정부가 제대로 중심을 잡고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여당이 더 심하다” “정치권은 나라 곳간이 넘쳐나는 줄 안다”는 등의 얘기도 나왔다고 한다.

이날 회의는 결론 없이 난상토론으로 끝났다. 회의가 끝나고 며칠 뒤 지경부는 1월 무역수지가 19억5700만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24개월 만에 적자라는 설명도 나왔다.

지경부는 이날 공식 브리핑에서 “무역적자는 일시적인 것으로, 2월에는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며 “연간 무역수지 흑자 목표인 250억달러 달성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심기/류시훈/이정호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