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궁 테러 사건을 다룬 영화 ‘부러진 화살’의 정지영 감독(66). 그는 미식가가 아니라고 했다. 전국의 촬영현장에서 닥치는 대로 먹는 습관을 들이다보니 음식 맛을 가리지 않게 됐고, 자주 가는 맛집도 없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과 ‘맛있는 만남’ 인터뷰를 위해 맛집을 잘 아는 지인의 추천을 받았다고 했다. 서울 삼청동에 있는 달항아리란 한식당이다. 과연 음식 맛은 담백하고 깔끔했다. 재료 자체의 맛을 살리기 위해 양념과 소스를 가급적 적게 사용했다.

‘부러진 화살’은 ‘남부군’과 ‘하얀 전쟁’으로 1990년대 최고 감독 반열에 올랐던 정 감독이 ‘까’ 이후 13년 만에 연출한 작품이다. 5년 전 석궁 테러 사건을 소재로 사법부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군더더기 없이 펼쳐냈다. ‘도가니’처럼 개봉 후 관객들이 사건의 진상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언론이 이를 보도하면 사법부가 입장을 발표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그런 가운데 순제작비가 상업영화 평균치의 6분의 1 수준인 5억원에 불과한 저예산 영화가 관객 수 300만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논란이 일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파장이 커질 줄은 몰랐습니다. 관객들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영화가 의외로 재미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석궁 사건을 다룬 법정 드라마니까 칙칙하고 지루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까 스스로 방청객이 돼 법정 드라마에 몰입하게 되더라고 하더군요.”

이때 들어온 전채요리 토마토 샐러드가 미감을 자극했다. 맛을 보니 고소하면서도 담백했다.

정 감독은 관객들이 의외성에 후한 점수를 줬다고 했다. 기존 법정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들에 눈을 떼지 못한다는 것이다.

“피고인 김 교수 역의 안성기 씨가 판사한테 ‘말 끊지 마세요’라고 하는 장면이 그렇지요. 관객들은 약간 놀랍니다. ‘죄수복을 입고 판사에게 저렇게 대들면 어떡해’라며 걱정합니다. 이어 판사는 죄수를 저렇게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가집니다.”

이런 소감이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퍼졌다. 사실인지 허구인지에 대한 설전도 벌어졌다. 문화평론가 진중권 씨는 “영화를 팩트(사실)로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사건의 변론을 맡았던 박훈 변호사는 정면 반박했다. 공판 기록을 자신의 블로그에도 올렸다.

정 감독은 “재판 장면의 90%는 사실에 입각해 연출했다”며 “영화를 위해 공판 기록을 꼼꼼히 살펴봤고 피고인 김명호 교수와 박 변호사를 만나 취재도 했다”고 말했다.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입에 넣은 문어숙회는 싱싱하고 쫄깃했다. 새하얀 색깔이 군침을 돌게 했다.

정 감독은 영화의 제작 동기에 대해 말을 이었다. 2009년 가을 무렵 문성근 씨가 한번 읽어보라며 책 한 권을 건넸다. 작가 서형 씨가 쓴 동명 르포였다. 읽어봤더니 흥미로웠다. 우선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공판 과정에는 판사의 ‘터무니없는’ 권위주의와 피고인의 ‘지나치게 도전적인’ 모습이 잘 묘사돼 있었다. 판사와 교수의 공방전도 재미있었다.

“박 변호사를 만나보니 참 독특한 사람이더군요. 영화 속에 김 교수와 박 변호사를 붙여놓으면 시선을 끌겠다 싶었습니다.”

시나리오는 2010년 겨울에 완성됐다. 문제는 투자였다. 투자자들은 정 감독을 만나주지 않았다. 투자 유치를 부탁했던 후배로부터도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법부를 비판하는 내용에 기업들이 투자할 리 만무하다는 얘기였다.

“하는 수 없이 돈을 빌려 1억~2억원짜리 독립영화로 만들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먼저 안성기를 만났지요. 출연료를 줄 수 없지만 주인공을 맡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가 독립영화 ‘페어 러브’에 출연했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와 만든 ‘남부군’과 ‘하얀전쟁’ 등은 정치·사회적으로 껄끄러운 작품이었지만 모두 성공했어요. 안성기로부터 다음날 출연하겠다고 연락이 오더군요. 러닝 개런티도 좋겠다면서요. 그 덕분에 상업영화 모양새를 갖췄어요.”

영화는 지난해 3월 크랭크인해 9월 말께 완성했다. 정 감독은 기존 법정 드라마와 차별화하는 데 고심했다. 할리우드 영화들은 배심원석과 판사석을 오가는 다양한 카메라워킹으로 지루하지 않게 묘사한다. 배심원제가 없는 한국 법정은 모두 앉아서 얘기하니까 움직임이 거의 없다. 그래서 변호사를 일부러 재판부 앞으로 불러내 촬영하기도 한다.

“저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영화의 진정성 때문이었죠. 대신 연기자들의 호흡에서 재미를 찾았습니다. 피고인이 판사를 향해 법전을 들추며 공격하도록 한 겁니다. 변호사한테 물어봤더니 그렇게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더군요. 법정모독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거죠. 약자가 권위에 도전할 때 관객들은 으쓱해집니다.”

김 교수가 감옥에서 교도소장을 고소한 재판 참관기도 녹여냈다. 김 교수가 판사한테 계속 질문했고, 교도소장은 ‘예’ ‘아니오’ 답변만 했다. 김 교수는 영화에서처럼 교도소장이 자신을 ‘징벌 방’에 넣어 다른 죄수로 하여금 폭행하도록 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법정에 서본 사람들은 사법부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는 것을 느낍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살아가는 판사들이 국민들에게 군림한다는 문제를 제기한 거죠. 사법부뿐 아니라 모든 권력자에 대해 위임받은 권력으로 국민에게 군림하는지, 국민과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지 영화를 통해 물었습니다. 소통 부재는 사회 지도층이 책임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자 했습니다.”

그는 ‘부러진 화살’의 파장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국민들은 사법부의 개혁을 요구합니다. 이 영화가 순기능을 한다면 사법부가 스스로 개혁해야 합니다. 개혁 방향은 전문가가 아니니까 저도 정확히 모릅니다. 다만 배심원 제도를 도입하고 부장판사 이상은 선출직으로 뽑아야 한다는 데 대중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1990년대 초 ‘남부군’과 ‘하얀전쟁’ 등으로도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다. 일부러 그런 이슈들을 선택해 영화화하는지 물었다.

“작가나 감독, 예술가는 사물을 달리 봐야 합니다. 보편적인 이데올로기와 지배 이데올로기가 있다면 ‘진짜 맞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해야죠. 영화를 통해 사회적 아젠다를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남부군’은 양쪽에서 비판받았다고 했다. 보수단체는 빨치산을 미화했다고, 급진 좌파 측은 강철 같은 신념의 빨치산을 감상주의자로 그렸다고 각각 비판했다. ‘하얀전쟁’은 월남전 참전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담았더니 참전 용사들이 제작사를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

“2000년대 한국영화가 본격 성장기에 들어선 후 투자를 받지 못했어요. 나이 든 감독의 감각이 낡았다고 생각한 거지요. 그것은 선입견이에요. 오히려 노련해지고 성숙해졌는데도 젊은 투자자들은 나이 든 감독을 만나주지 않아요. 그래서 한국 감독들은 조로해버립니다.”

결과적으로 국내 영화계는 다른 나라보다 신인 감독이 많이 배출되는 편이지만 열 명 중 한 명이 살아남기도 어렵다고 그는 지적했다.

“투자자나 감독이나 모두 손해예요.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극복해야 영화계도 살아날 겁니다. 트렌디한 영화는 젊은 감독에게 맡기고, 보편적인 테마의 영화는 나이 든 감독에게 맡기는 게 상책입니다.”

그는 한국영화계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배우들에게만 돈이 몰리는 기형적인 구조를 꼽았다. 할리우드 방식을 따르다보니 스타를 캐스팅해야 기업들이 투자를 하고, 배우 몸값도 자연히 솟구친다는 것이다.

“한 명의 스타가 ‘부러진 화살’ 영화 한 편 값을 출연료로 받습니다. 많은 배우들이 부자가 됐지만 감독 중에 돈 번 사람은 극소수예요. 강우석 강제규 박찬욱 감독 등은 자신의 영화사를 설립해 돈을 벌었죠. 임권택 감독은 용인에 아파트 한 채밖에 없어요. 예전에는 배우들과 감독 간 격차가 이처럼 심하지 않았어요.”

그는 지금까지 영화에 매진한 것은 잘했지만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은 잘못한 일이라고 했다. 매년 오르는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자주 이사하는 바람에 아들이 초등학교를 여섯 번이나 옮겼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영화로 뒤늦게나마 가족들에게 진 빚을 어느 정도 갚게 됐다고 그는 덧붙였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정지영 감독의 추천집 달항아리

양식 스타일의 한식당…담백하고 깔끔한 뒷맛 일품

달항아리는 변형 한식당이다. 샐러드 등 서양식 음식이 섞여 있고 음식이 순서대로 나온다. 찬 메뉴와 따뜻한 음식들을 고유 형태로 즐길 수 있다. 담백하고 뒷맛이 깔끔하다.

전채요리인 토마토 샐러드는 토마토에 올리브오일을 살짝 버무렸다. 문어숙회도 싱싱하다. 동해안 영덕에서 잡은 문어를 현장에서 쪄서 급속 냉동해 직송해왔다고 한다. 문어는 현지에서 삶아야 쫄깃한 맛이 살아난다. 차돌박이 구이는 파무침과 곁들여 먹는다. 다른 식당들처럼 겨자나 된장 소스를 바르지 않았다. 차돌박이 구이의 고소한 맛을 살리되 파무침으로 느끼함을 줄여준다. 제주도에서 가져온 반건조 옥돔구이도 간이 적절하게 배 있다.

계절에 따라 깻잎전이나 부추전 등을 곁들이기도 한다. 이것들에도 기름을 적게 쓴다. 전은 만드는 데 손이 많이 가지만 따뜻한 요리 구색을 갖추기 위해 내놓는다고 주인 정현옥 씨는 귀띔했다.

이런 메뉴들을 종합한 한상차림 메뉴는 1인분에 3만원. 여기에 간장게장과 잡채 낚지볶음 등을 추가한 항아리 정식은 4만5000원이다. 간장게장도 ‘강추’할 만하다. 비린내가 없으며 짜지 않고 맛이 풍부하다. 게를 찔 때 야채들을 섞어 맛을 냈기 때문이다. (02)737-7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