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반값 등록금'이 가져온 대학불신
대학 등록금이 세간의 이슈로 부각되면서 요즘 대학 체면이 엉망이다. 특히 국공립대의 체면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법적 근거도 없이 거둬들인 기성회비를 학생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에서는 부당 이득을 취한 파렴치한으로까지 내몰린 형국이다.

대학 등록금 논란은 정치권에서 시작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걸었던 등록금 인하 공약은 ‘졸업 후 등록금 상환제’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여당의 원내 대표가 작년의 10·26 보궐선거에서 20~30대의 표를 의식한 탓인지 뜬금없이 ‘반값 등록금’을 들고 나오면서 논쟁에 불을 지폈다. 곧 이어 감사원은 국공립대에 대한 감사를 했고 기성회비의 일부를 교직원 급여 인상에 쓴 일부 총장들에 대한 징계를 교육과학기술부에 요구했다. 최근에는 법원이 8개 국공립대 학생 4000여명이 낸 부당이득 반환청구 소송에서 학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힘입은 학생들은 소송의 범위와 규모를 더 확대할 조짐이다.

기성회비 징수는 1960년대 초반 정부가 ‘수익자 부담원칙’의 명분으로 수업료와 입학금 외에 받을 수 있도록 한 문교부 훈령(대학, 중·고교 기성회 준칙)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당시에 열악했던 대학의 재정난을 덜어주고 시설확충을 위한 것이었다. 필자의 대학 시절에도 기성회비가 수업료보다 더 많았다.

기성회비가 어떤 근거로 거둬졌든 이는 50여년 동안 아무런 말썽 없이 등록금의 일부로 인식됐고 대학 재정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해 왔다. 이제 와서 불거진 것은 반값 등록금을 미끼로 젊은 층의 표를 얻어 보겠다는 정치권의 얄팍한 노림수 때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등록금이 교육 서비스의 가격이라면 가격은 법적 근거를 가져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기성회비에서 교직원들의 급여를 보조한 것을 부당 사용으로 간주하는데 국공립대 교수들의 봉급 명세서를 한 번이나 들여다보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사회 양극화(?)가 쟁점인 요즈음, 국공립대 교수들이 박봉에 생활고를 느낀다고 하면 ‘철밥통’들의 사치스러운 엄살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총액과 국고에서 주는 봉급이 얼마인지 확인해보기 바란다.

이번 기성회비 건으로 대학의 교육 현장은 크게 뒤틀릴 것이다. 대학의 재정적 어려움도 문제가 되겠지만 더 심각한 것은 권위와 존경, 그리고 신뢰에 바탕을 둬야 할 교수와 학생 간의 관계에 불신의 골이 깊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학생들로부터 부당 이득을 취했다는 교수들이 어떻게 떳떳하게 강단에 설 수 있겠는가? 내 돈 내놓으라고 언제 달려들지 모르는 학생들이 교수들의 눈에는 어떤 존재로 보이겠는가?

문제의 발단이 된 반값 등록금은 가당한 말이 아니다. 대학 교육의 질을 형편없이 떨어뜨리고 모든 사람이 걸쳐야 하는 장식품 정도로 그 위상을 추락시킬 것이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도 될 사람까지 대학으로 불러들여 대졸자의 취업난도 한층 가중시킬 것이다. 무엇보다도 고등교육으로 인한 수익은 개인에게 귀속될진대 그 등록금의 일부 또는 전부를 제3자가 부담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기성회비 중에서 학생들에게 돌려줘야 할 부분이 있다면 이 돈은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 국공립대는 사립대와는 달리 재단으로부터 전입금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학생 등록금과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지출 효율화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등록금을 낮춰야 한다면 정부 보조금을 늘려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국공립대라는 간판을 아예 내리는 것이 방법이다.

정치인이 자신의 표를 위해 등록금을 빌미로 대학을 압박하고 교수와 학생을 이간질하는 일이 더 이상 자행돼서는 안 된다. 교직원들의 자존감도 더 이상 훼손돼서는 안 된다. 차제에 수업료와 기성회비를 통합하고 허무맹랑한 반값 등록금 논란을 완전히 접어야 한다.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