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원 창업…'活人劍 경영'으로 매출 400억대 플라스틱 파이프社 일궈
선발제인(先發制人). 이국로 사이몬 회장(65)이 연초에 내건 올해의 경영방침이다. ‘한발 앞서 남을 제압한다’는 의미다. 그는 이를 위해 몇 가지를 구상 중이다. 우선 기존 제품에 안주하지 않고 신제품 개발을 확대하는 한편 과감하게 투자할 계획도 갖고 있다. 남들이 불황의 파고 앞에서 몸을 움츠릴 때 오히려 공격경영에 나서고 있다. 이는 엄청난 파워로 모든 것을 압도하는 ‘사막의 폭풍’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사명 사이몬과 일맥상통하는 정신이다.

이국로 회장은 괴짜 경영인이다. 첫째, 그의 서울 당산동 사무실에는 경영 경제에 대한 서적은 별로 없다. 그 대신 중앙에 큰 칼 2개가 놓여 있고 서가에는 무술에 관한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다. 검도교본을 비롯해 한국의 전통 무술에 관한 책 등이다. 줄잡아 수백권에 이른다. 그는 올해 검도 최고봉인 8단에 도전한다는 꿈을 갖고 있다. 7단으로 승단한 지 16년이 됐지만 그의 승단 꿈은 녹슬지 않았다.

3만원 창업…'活人劍 경영'으로 매출 400억대 플라스틱 파이프社 일궈
이 회장은 “해방 이후 8단을 딴 사람은 30여명에 불과하다”며 “승단 목표를 향해 오는 4월 또다시 도전할 계획”이라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이미 그는 검도와 전통무예 등을 합쳐 무술 14단의 고수다. 그런데도 최고에 오르기 위해 도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둘째, 그는 검소하다. 수십년된 양복을 짜깁기해서 입고 구두 밑창을 갈아서 신는다. 애용하는 식당은 사무실옆 4000원짜리 가정식 백반집과 3500원짜리 잔치국숫집이다. 그런데 그가 뜻밖에도 무도인 육성과 전통 무예 창달을 위해 사재 100억원을 연차적으로 출연키로 하고 한국예도문화장학체육재단을 최근 출범시켰다.

무도를 통해 심신을 단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건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포부에 따른 것이다. 이 회장은 “요즘 젊은이들은 몸과 마음이 나약해 조금만 힘들어도 자살하는데 무도를 수련하게 되면 이런 일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무도인 가운데 생활고를 겪는 선배들에 대한 생활비 지원과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지원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중장기적으론 서울에 무도관도 세울 생각이다.

셋째, 경영스타일이다. 그의 가훈은 ‘나는 남과 다르다’이고 사훈은 ‘입정(立正)’이다. 남과 다르게 살되 바른 것을 세운다는 의미다. 올해로 햇수로 40년째 플라스틱 파이프 외길을 걷고 있는 그는 이 경영스타일로 단돈 3만원을 들고 창업해 플라스틱 관련 제품을 생산·판매해 연매출 430억원의 기업(계열사 포함)을 일궈냈다. 플라스틱 파이프 분야에선 국내 2위다.

수백개의 플라스틱 파이프 업체들이 수없이 명멸하고 창업한 지 10년을 못 넘기는 기업이 허다한 가운데 어떻게 그는 맨손으로 굴지의 플라스틱 파이프업체를 일궈냈을까. 이 회장은 한양대 재료공학과 졸업 후 1973년 서울 마장동 10평짜리 임차공장에서 플라스틱 파이프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초기엔 자신을 각인시키기 위해 한복에 짚신을 신고 다녀 기인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비오는 날 진흙이 잔뜩 묻은 짚신을 신고 거래처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조선호텔에 들어가려다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 영업을 하는 과정에서 작든 크든 상대방 회사 일을 도왔다. ‘남을 이롭게 해야 나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뜻에서였다.

지금은 김포에 부지 3만㎡짜리 공장과 충북 음성에 2만㎡짜리 공장(계열사 지주)에 약 100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나 여전히 남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검도의 정신은 남을 죽이는 게 아니라 위기에 처했을때 칼을 통해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업 경영에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은 새로운 기술과 좋은 품질로 고객의 요구를 뛰어넘는 것을 의미한다.

경기 김포시 통진읍에 있는 사이몬 본사에 가보면 각종 파이프가 마당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공장 안으로 들어서면 라인 길이가 100m에 이르는 거대한 설비가 놓여 있다. 독일제 압출기다. 고가의 설비다. 폴리에틸렌(PE)이나 염화비닐수지(PVC) 원료를 커다란 용기에 넣은 뒤 이를 녹여 일정 형태로 만든 후 진공설비를 거쳐 식혀서 파이프로 만든다. 얼핏보면 간단한 설비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 회사가 만드는 파이프는 수십종에 이른다. 규격에 따라 분류하면 수백종에 달한다. 수도관용 하수관용 통신용 전선용 가스관용 파이프 등이다. 직경이 1300에 이르는 대구경 파이프도 있다.

용도에 따라 소재와 물성 등이 전부 다르다. 예컨대 땅속에 묻히는 통신용 파이프는 주름관 형태를 띠고 있다. 땅속의 지형물에 따라 자유자재로 매설하기 위한 것이다. 수도관용은 인체에 무해한 소재로 만든다. 수도물이 얼지 않게 하기 위한 보온용 파이프도 있다.

이 회사 시험실에 들어가보면 인체유해성 여부를 시험하는 장비를 비롯해 인장강도 압축강도 시험장비, 그리고 영하 20도에서 일정 시간 냉각시킨 뒤 1.5m 위에서 떨어트려 파이프가 깨지지 않는지 시험하는 장비 등 수많은 테스트 장비가 눈에 들어온다.

특히 플라스틱 파이프의 단점인 연결문제를 간편하게 해결하기 위해 ‘판도(PANDO)관’을 개발하는 등 10여가지 신기술 신제품을 개발했다. 하수관이 물보다 가벼워 홍수가 났을 때 물에 뜨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PE 내부에 탄산칼슘을 섞어 비중을 1 이상으로 높인 복합관도 개발했다. 일부 제품에 대해선 특허 등록하고 신기술과 신제품 인증도 받았다.

3만원 창업…'活人劍 경영'으로 매출 400억대 플라스틱 파이프社 일궈
그는 “이처럼 남과 다른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육상용 파이프에서 한걸음 나아가 해양용 제품도 개발해 신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예컨대 수력발전소에 유입되는 물 속의 불순물을 미리 걸러주는 장치가 한 예다.

플라스틱 파이프를 물에 띄운 뒤 거름망을 통해 쓰레기를 잡아내는 장치다. 바다에 띄우는 오탁방지시설과 인공식물섬 가두리양식장 설비도 개발했다. 플라스틱과 목재를 섞은 합성목재도 개발해 데크재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는 올해 몇 가지 사업목표를 세웠다. 우선 해양용 플라스틱 파이프 제품 관련 설비와 한 차원 기술력을 높인 하수도관 제조설비 등에 약 40억~50억원을 투자할 생각이다. 아울러 상품성이 있다고 판단된 합성목재도 본격 생산할 예정이다. 수출 확대도 숙제다. 이 회장은 “작년에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각종 플라스틱 파이프를 300만달러어치 수출했는데 올해는 시장을 일본 동남아 등지로 넓혀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들인 이현상 지주 사장(37)에게 일상 업무의 상당 부분을 위임했으나 국내외 영업이든 기술개발이든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임전무퇴의 도전정신만큼은 지속적으로 임직원에게 주입시키고 있다. 인터뷰를 마친 뒤 단골식당인 가정식 백반집에서 식사를 마친 그는 동남아 시장에서의 진검승부를 위해 비행기편에 몸을 실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