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불황 탓 … 치솟는 원자재값 '떠넘기기'
시멘트와 레미콘업계가 또 다시 정면충돌 양상이다. 시멘트 업계의 일방적 가격 인상에 레미콘 업계는 인상 철회를 요구하며 오는 22일부터 전면파업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2008년 이후 거의 매년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일상이다.

시멘트업계는 수요자인 레미콘업계에 “건설업체에 레미콘 가격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라”고 떠넘기고 있고, 레미콘업계는 “시멘트 가격 인상을 철회하든지, 건설사가 가격을 조정해달라”고 양쪽에 손을 벌린다. 건설사는 “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팔짱을 끼고 있다.

어느 한쪽이 양보하거나, 3자가 조금씩 물러서지 않으면 모두 공멸할 수밖에 없는 ‘치킨게임’ 양상이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꼬이게 됐을까.

◆건설업계 불황이 주요 원인

가장 큰 원인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불어닥친 건설업계 불황이다. 건설 일감이 급감한 가운데 원자재 공급자인 시멘트-레미콘업체들과 건설업체들은 이렇다 할 구조조정 없이 ‘서바이벌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원자재 가격은 상승세를 멈추지 않아 셋 중에 누군가는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금융위기 직후만 해도 분위기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2008년 4월 시멘트업체들이 시멘트 가격을 당 5만3000원에서 5만9000원으로 올리자 레미콘업계는 건설업계에 레미콘 평방미터()당 12% 인상을 요구했다. 레미콘업계는 파업에 들어갔고, 대기업 건설사들이 8.7% 인상에 합의해줘 파업은 사흘 만에 종결됐다.

2009년 시멘트값 인상 땐 시멘트업계가 조건을 달아 레미콘 업계를 설득했다. t당 5만9000원에서 6만7500원으로 올리되 건설사에 레미콘값 인상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했고, 당분간 시멘트값을 올리지 않겠다고 레미콘 업계에 약속했다. 파업은 없었고 이후엔 오히려 가격이 떨어졌다. 건설업황이 부진한 가운데 시멘트업계 내에서 치열한 경쟁이 붙으면서 당 5만3000원으로 1만4500원(21%)이나 내려갔다.

◆연이은 가격인상에 레미콘업계 반발

상황이 반전된 것은 지난해 4월. 한계상황에 몰린 국내 7개 시멘트업체들은 국제원유값, 유연탄값 인상 등을 이유로 가격을 당 6만7500원으로 복귀시켰다. 레미콘업계가 반발했지만 그동안 시멘트업계의 과당경쟁에 따른 가격 안정세 덕분에 한숨을 돌리고 있던 차여서 2008년과 같은 파동은 없었다. 건설업계가 3% 인상에 합의해줬다.

그러나 이번 인상에 대해선 단호하다. 레미콘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시멘트가격 인상에 따른 대책을 논의하고 있던 차에 6개월 만에 다시 아무런 사전통보 없이 15%를 전격 인상해 원가부담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됐다”며 “이는 레미콘 업체들에 문을 닫으란 소리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레미콘업계는 시멘트 가격인상을 철회하든지, 건설사가 레미콘 구입가격을 당 3000~4000원 올려주지 않으면 22일부터 파업에 돌입한다는 입장이다.

시멘트업계 관계자는 건설사에 화살을 돌리고 있다. 한 관계자는 “시멘트 가격 인상으로 건설 원가가 높아질까봐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30평 아파트 1채를 짓는 데 직간접적으로 투입되는 시멘트가 대략 30t 정도에 불과하다. 시멘트 가격을 t당 1만원 올려도 아파트 한 채의 공사비가 30만원밖에 오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시멘트-레미콘-건설사 네탓 공방

건설업계는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 일감도 없는 상황에서 레미콘 가격을 높여주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을 수도 없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레미콘 공급이 지연되면 공사기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철강 가격 인상으로 난리를 겪었다”며 “연초부터 레미콘업체들이 조업 중단을 예고해 공사 현장에서는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레미콘사들이 22일이라는 다소 긴 틈을 둔 것은 시멘트사와의 협상을 염두에 둔 포석이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지금은 비수기여서 건설현장에 공급을 중단해도 성수기만큼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박수진/김진수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