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법조계에 널린 '부러진 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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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원 지식사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
“부러진 화살 말입니까? 변호사들 이런 영화 만들 만한 사건 다 몇 개씩은 겪어요.”
30대 후반의 한 중견 A변호사는 31일 기자와 만나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본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A변호사는 자신이 ‘부러진 화살’ 사건이 있던 즈음에 겪은 사례를 소개해줬다. 그가 대리하는 한 중소기업 대표의 공판 기일이 구속기소 6개월째를 1주일가량 앞두고 열렸다. 이 대표는 연립주택 분양과 관련한 배임죄로 재판을 받는 중이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피의자가 구속기소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판결이 나와야 한다.
공판기일에 나가자 판사는 난데없이 “검찰에서 공소장을 변경하겠다고 하니, 동의하겠느냐”고 물었다. 피의자가 자기 업무를 했느냐, 타인의 업무를 했느냐는 배임죄의 핵심 내용과 관련된 사항이었다. A변호사는 선고가 임박한 상황에 당황스러웠지만, 변경해도 무죄를 받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생각에 동의해줬다. 판사는 “변경에 대한 의견이 있느냐”고 물었고 A변호사는 다음 기일이 열릴 것으로 여기고 “검토해 보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판사는 공판검사에게 곧바로 “구형하시죠”라고 말했다. 검사는 징역 1년2개월을 구형했고, 판사는 그 자리에서 검찰 구형량을 그대로 선고해 버렸다.
A변호사는 어이가 없어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선고가 임박한 상황에서 검찰 공소 내용에 납득이 가지 않으면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당연히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선고기일을 별도로 잡아 변론할 기회라도 줬어야 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판사가 검찰과 한통속이 된 게 아니냐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고 털어놨다.
A변호사는 항소해 2심과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피고인이 억울하게 산 옥살이 220여일에 대해서는 하루 10만원씩의 배상판결도 받았다. 대법원의 한 판사는 “공소장의 주요 내용 변경에 대해 변론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부러진 화살’은 법치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사법테러’를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가해자인 김 교수보다는 사법부에 비판의 눈길을 보내는 것에 대해 판사들이 한번쯤 깊이 생각해봐야 할 듯 싶다.
임도원 지식사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
30대 후반의 한 중견 A변호사는 31일 기자와 만나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본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A변호사는 자신이 ‘부러진 화살’ 사건이 있던 즈음에 겪은 사례를 소개해줬다. 그가 대리하는 한 중소기업 대표의 공판 기일이 구속기소 6개월째를 1주일가량 앞두고 열렸다. 이 대표는 연립주택 분양과 관련한 배임죄로 재판을 받는 중이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피의자가 구속기소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판결이 나와야 한다.
공판기일에 나가자 판사는 난데없이 “검찰에서 공소장을 변경하겠다고 하니, 동의하겠느냐”고 물었다. 피의자가 자기 업무를 했느냐, 타인의 업무를 했느냐는 배임죄의 핵심 내용과 관련된 사항이었다. A변호사는 선고가 임박한 상황에 당황스러웠지만, 변경해도 무죄를 받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생각에 동의해줬다. 판사는 “변경에 대한 의견이 있느냐”고 물었고 A변호사는 다음 기일이 열릴 것으로 여기고 “검토해 보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판사는 공판검사에게 곧바로 “구형하시죠”라고 말했다. 검사는 징역 1년2개월을 구형했고, 판사는 그 자리에서 검찰 구형량을 그대로 선고해 버렸다.
A변호사는 어이가 없어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선고가 임박한 상황에서 검찰 공소 내용에 납득이 가지 않으면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당연히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선고기일을 별도로 잡아 변론할 기회라도 줬어야 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판사가 검찰과 한통속이 된 게 아니냐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고 털어놨다.
A변호사는 항소해 2심과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피고인이 억울하게 산 옥살이 220여일에 대해서는 하루 10만원씩의 배상판결도 받았다. 대법원의 한 판사는 “공소장의 주요 내용 변경에 대해 변론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부러진 화살’은 법치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사법테러’를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가해자인 김 교수보다는 사법부에 비판의 눈길을 보내는 것에 대해 판사들이 한번쯤 깊이 생각해봐야 할 듯 싶다.
임도원 지식사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