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대다수, 경쟁서 얻는 혜택보다 낙오자가 겪는 피해에 더 민감"
“우리 국민들의 시장경제에 대한 인식이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이번 조사를 실무적으로 담당한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사진 )는 29일 “시장에 대한 이중적 태도가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응답자들이 원론적인 측면에서 시장 친화적인 입장을 보이다가도 현실 속의 구체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정부 개입을 요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장경제에 대한 지지도가 생각보다 낮은 것 같다.

▲‘자유로운 경쟁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거나 ‘경쟁은 결과적으로 사회와 경제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단순명료한 질문에도 적극적인 지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은 뜻밖이었다. 아무래도 자본주의 위기론이 ‘대세’로 부각된 사회적 현상을 반영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시장경제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어떻게 봐야 하나.

▲경제이해도가 높은 응답자일수록 강하게 나타났다. 이들은 시장경제 원리와 시장 기능에 대한 신뢰가 높기는 하지만 현실에선 시장이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원론적으로는 시장경제를 지향하면서도 우리나라에서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 충족되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시장경제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거나 부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능력에 상응하는 보상, 자유롭고 자발적인 거래 허용, 가격 기능, 사유재산권 보호 등에 대해서는 찬성하면서도 경제에 외부 충격이 오면 정부가 가격을 제한하는 방식 등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는 시장경제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정부가 가격을 제한했을 때 발생하는 왜곡과 폐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개입은 어느 정도 필요한 것 아닌가.

▲과도한 기대는 시장 기능을 왜곡시킬 수 있다. 응답자 중 상당수는 시장에 충격이 왔을 때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예컨대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거나 재래상인을 보호하는 등 당장 눈에 보이는 조치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는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정부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커진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는 정부의 개입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부정적 효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비롯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시장경제 원리의 핵심인 경쟁에 대해서도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상당수는 치열한 경쟁이 수익성을 악화시키거나 대기업 진출로 인해 중소기업이 피해를 본다고 우려하고 있었다. 경쟁으로부터 얻는 혜택보다는 경쟁에 탈락하는 낙오자가 겪는 피해에 더 민감한 것이다. 시장경제 원리의 핵심은 경쟁으로 인한 효율성 제고와 혁신으로 성장을 기대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응답자들은 시장경제에서 경쟁이 혁신적이고 효율적인 기업은 살아남게 하고, 비효율적인 기업들은 퇴출시키면서 전체적으로는 시장 전체의 효율성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의 원리에 대한 인식과 신뢰가 부족한 것으로 풀이된다. 소득분배에 대한 높은 관심과 복지에 대한 요구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런 응답에는 경쟁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등으로 확고하게 나눠지면서 경제 전체의 소득 분배가 악화되고 있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