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1567m)이냐, 금대봉(1418m)·대덕산(1307m)이냐를 놓고 잠시 고민하다 후자를 택한 게 실수였다. 태백산은 주목 군락지의 눈꽃과 백두대간의 설경, 장엄한 일출 등이 아름다운데다 경사가 완만하고 눈길이 험하지 않아 한겨울에도 찾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으면 자연이 주는 감동은 덜하다. 그래서 좀 한적한 곳으로 택한 대안이 두문동재~분주령~검룡소 주차장 코스였다. 안내판에 나와 있는 거리는 6.6㎞, 3시간이면 걸을 수 있는 코스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설원의 악전고투 5시간30분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을 잇는 고개인 두문동재 아래에는 두 개의 터널이 있다. 38번국도의 두문동재터널과 두문동재2터널이다. 그중 두문동재터널 남쪽 산길로 난 옛길을 따라 10분 남짓 걸어오르니 해발 1260m의 두문동재. 예전에는 고한과 태백을 오가려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38번국도의 고개였지만 터널이 생긴 뒤로는 차량이 거의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이 됐다. 덕분에 옛길에 쌓인 눈이 발목을 덮는다. 흩날리는 눈발 속에 ‘백두대간 두문동재’라는 표지석이 우뚝하다.

여기서 게이터(각반)와 아이젠을 착용하고 눈길로 접어든다. 방향은 북쪽이다. 산행객이 거의 없었는지 초입부터 무릎 위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이다. 등산 경력 30년의 김상구 문화관광해설사가 앞장서서 길을 개척하는데도 뒤따라가기가 벅차다. 서너 걸음에 한 번씩은 헛걸음을 내딛고 휘청거리기 일쑤다.

아예 눈밭에 무릎을 꿇는 굴욕도 여러 차례.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나 ‘천상의 화원’으로 불리는 금대봉 아래 자생식물 군락지도 온통 눈에 덮였다. 그나마 금대봉 자락을 지나자 어디가 길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도 환갑을 넘긴 김 해설사는 용케도 길을 찾아 통로를 개척한다. 엎어지고 휘청거리며 분주령을 지나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로 내려오니 오후 3시30분. 5시간 반을 눈밭에서 헤맸다. 일행 가운데 태백산으로 향했던 팀은 벌써 하산해 점심까지 먹고 난 뒤였다. 시간을 맞추려면 금대봉으로 갔다가 두문동재로 돌아가야 했던 것이다.

◆퇴장 앞둔 국내 유일 스위치백 철로

늦은 점심을 먹고 태백 투어에 나섰다. 먼저 찾아간 곳은 국내 유일의 스위치백(switchback) 철로. 스위치백은 ‘자세를 반대로 바꾼다’는 뜻인데 열차가 지그재그 형태로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급경사면을 오르내리는 것이다. 태백의 통리역과 삼척의 도계역을 잇는 16.5㎞의 영동선 가운데 흥전역과 나한정역 사이 1.5㎞가 스위치백 구간이다.

통리역을 출발한 열차가 흥전역에 접근하자 스위치백 구간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흥전역에 머리를 앞세우고 들어간 열차는 잠시 후 방향을 바꿔 후진으로 나한정역을 향해 내려가다 나한정역에서 다시 방향을 바꾼다.

오는 6월 신설 역인 동백산역과 도계역을 잇는 나선형의 솔안터널(16.2㎞)이 개통되면 이 스위치백은 50년 세월을 뒤로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통리~도계역 간 17개 터널이 하나로 통합되는 셈. 솔안터널을 포함한 새로운 구간은 17.8㎞로 이전보다 거리는 1.8㎞ 단축되고 운행 소요시간도 이전의 36분에서 16분으로 20분이나 줄어든다. 스위치백 철도가 실어날랐던 탄광촌의 애환과 여행객들의 낭만은 이제 누가 대신할 것인가. “노선이 사라진다고 하니 작년 여름부터 찾아오는 여행객이 많이 늘었다”는 유영면 흥전역장의 표정에도 아쉬움이 짙게 배어있다.

◆추억의 탄광촌, 그 아련함

한때 흥성했던 탄광촌은 쇠락을 거듭해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태백시 상장동 남부마을은 사라지는 탄광촌의 옛 추억을 되살리는 곳. 지난해 6개월간의 벽화 작업으로 마을 전체가 ‘벽화 이야기 마을’로 탈바꿈했다.

석탄산업이 호황이던 시절엔 개도 1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비롯해 70여개의 벽화가 대로와 골목을 빼곡하게 장식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갖고 있는 추억의 사진들과 함께 어린이가 그린 풍경화가 온통 까만색이었다는 슬픈 이야기도 전해준다.

태백=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 여행팁

태백에선 봐야 할 게 많다. 고랭지 배추밭으로 유명한 태백시 삼수동 귀네미마을엔 산 능선을 따라 세워진 11기의 풍력발전기가 새로운 명소로 이름을 얻고 있다.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黃池), 한강·낙동강·오십천의 분수령인 삼수령(三水嶺)도 놓칠 수 없다. 태백산의 천제단과 단군성전, 석탄박물관, 눈썰매장,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도 태백의 명소다.

맛집도 많다. 수타 짜장면으로 유명한 통리역 인근의 연화반점(033-552-8359), 고등어·갈치·두부조림이 유명한 초막고갈두(033-553-7388), 한우 생고기가 일품인 태백한우골(033-554-4599), 춘천닭갈비와 달리 냉이·부추·고구마·라면·쫄면 등을 한꺼번에 넣고 끓여먹는 태백닭갈비(033-553-8119)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