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창을 띄워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모두 입력하고 마우스 커서를 로그인 버튼 위에 올려둔 채로 9시 정각이 되기만을 기다린다. 컴퓨터 시계가 8시59분에서 9시로 넘어가는 순간 잽싸게 로그인 버튼을 클릭한다. 아뿔싸. “9시부터 17시까지 신청 가능합니다”란 표시가 나온다. 컴퓨터 시계가 약간 빠르게 맞춰져 있었나 보다. 부랴부랴 다시 로그인 창을 채워넣고 접속해보지만 이미 늦었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환한 표정으로 성공했다고 신나하는 모습이 얄밉게 보인다. 대학교 수강신청 날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원하는 과목을 모두 집어넣은 사람은 계획했던 시간표대로 새 학기를 맞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개강 첫 주 내내 과사무실을 찾아다니며 수업 변경을 하느라 고생을 해야만 한다.

기자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이미 인터넷으로 수강신청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었다. 총 여덟 번의 수강신청을 하는 동안 시스템의 인터페이스 등이 계속 바뀌긴 했지만 인터넷에 접속할 수만 있으면 장소와 관계없이 학년별로 주어진 날짜에 수강신청이 가능했다.

다음 학기에 개설되는 수업은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이 시작될 무렵 과사무실에 들러 책자로 만든 수강편람을 받아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재미있던 것은 이미 인터넷으로 수강신청을 하던 시절이었음에도 수강편람 책자 끄트머리에 종이로 된 수업신청서가 몇 장씩 붙어 있었다는 점이다.

인터넷은커녕 컴퓨터조차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1990년대 초반까지는 기자가 수강편람에서 봤던 수업신청서에 일일이 과목 이름과 코드를 손으로 적어 직접 제출해야 했다고 한다. 대개 해당 학과사무실에 신청서를 냈다. 조교들은 인원수를 체크해가며 수업신청을 받았고 이를 다시 학교 전산실에 내면 내부 컴퓨터에 입력하는 식이었다.

인기가 많은 수업을 듣기 위해서라면 전날 밤부터 학과사무실 앞을 지키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학교마다 방식이 달랐지만 교양수업은 해당 학과사무실에 따로 제출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주전공 수업 3개, 부전공 수업 2개, 교양 수업 1개를 듣는다면 총 세 군데의 사무실을 찾아가 신청서를 내야 하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지는 시점이다.

학생들은 저마다 우선순위를 매겨가며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수업의 학과사무실 앞에 줄을 섰지만 예상과 실제가 같으란 법은 없다. 새벽부터 줄을 섰던 수업은 오후까지도 마감이 되지 않는 반면 널널하리라 예상했던 수업은 신청과 함께 마감되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이 같은 수기식 수업신청서는 학교에 따라 OMR(광학마크인식) 카드로 바뀌기도 했다.

컴퓨터 보급이 늘어나고 네트워크망이 구축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는 수강신청 역시 컴퓨터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웹을 기반으로 한 시스템이 완전히 정착된 1990년대 후반까지 몇 년 동안은 일종의 과도기였다. 전산실에 비치된 학교 전산망 접속 전용 단말기를 통해 수강신청을 하던 곳도 있었다.

하이텔, 나우누리 등 PC통신과 비슷한 텔넷 기반 시스템으로 수강신청을 하던 학교도 있었다. 모뎀이 장착된 컴퓨터가 있으면 집에서 접속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 학생들은 학교 컴퓨터실을 이용했다. 자리를 맡지 못한 학생들은 학교와 가까운 PC방을 단체로 찾았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보급되고 월드와이드웹(WWW)을 기반으로 한 웹사이트가 구축되면서 더 이상 전날 밤부터 학교에서 밤을 새우거나 수강신청 변경을 위해 수기식 수업신청서를 들고 학과사무실과 전산실을 뛰어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일일이 손으로 그렸던 시간표 역시 학교 웹사이트에 들어가 원하는 수업들을 고르면 자동으로 시간표를 만들어 보여준다. 변하지 않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원하는 시간표를 완성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뿐인 것 같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