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 to Head] 시장중심 '3.0' 실패 주장은 허구…경제현상 진단·처방도 곳곳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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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4.0은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 본질은 시장보다는 정부의 실패
풍요한 사회 위한 해답은 시장의 몫 축소 아닌 확대
글로벌 금융위기 본질은 시장보다는 정부의 실패
풍요한 사회 위한 해답은 시장의 몫 축소 아닌 확대
주목을 받았지만, 그의 주장은 문제들을 안았다. 먼저 짚어야 할 것은 그가 자신의 처방을 ‘자본주의 4.0’이라고 포장한 일이다. 현대 서양의 자본주의를 1, 2, 3 버전으로 구분한 것은, 그것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서, 일단 역사적 사실을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자본주의 4.0’은 실재가 아니라 그가 제시한 청사진일 뿐이다. 자신이 만든 청사진이라고 분명히 밝히는 대신 ‘자본주의 4.0’이라는 이름을 달고 그것이 필연적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그는 정당화되기 어려운 오만과 부정직을 보인다.
경제 현상의 진단도 부실하다. 그는 이번 금융 위기가 거의 순수한 시장의 실패라고 단정한다. 책임을 따지기로 한다면, 정부의 실패가 훨씬 컸다. 애초에 자산 거품을 낳은 것도 정부고 그런 거품의 위험에 대비할 책임을 소홀히 한 것도 정부다. 특히 금융 부문의 정책들과 규제들은 투자 위험을 사회가 책임지도록 해서 금융기관들의 도덕적 해이를 불렀다. 이런 도덕적 해이를 막을 길은 좀처럼 보이지 않지만, 시장 규율(market discipline)이 그래도 가장 낫다는 것이 정설이다.
‘자본주의 3’이 실패했다는 그의 진단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이 시기에 세계는 유례 없는 경제 성장과 풍요를 누렸고 공산주의 붕괴 덕분에 여러 억압적 사회들이 자유로운 사회로 바뀌었다. 비록 발전된 사회들은 상대적으로 경제 성장이 느려졌지만, 신흥 사회들은 시장 경제를 고른 덕분에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중국과 인도에선 많은 일자리들이 생겼다. 세계화가 많이 진전된 이 시기의 평가에서 서양만을 따로 떼어내서 살피고 시장의 혜택을 많이 입은 신흥 국가들을 제외하니, 그 시기가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제 경제적으로는 온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 걸맞은 정치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의 무역 흑자와 미국의 무역 적자에서 나온 세계적 불균형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고 끝내 위기를 불렀다. 그런 국제 정치의 문제를 시장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중국의 경제적 성취에 관한 설명에서도, 그는 흔한 오류에 빠진다. 1978년에 명령경제를 버리고 시장경제를 채택한 뒤 중국이 비로소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시장경제의 우수성을 잘 보여준다. 중국의 빠른 경제 성장이 중국의 ‘국가 자본주의’의 우수성을 보여주며 그래서 서양의 원숙한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그의 주장은 우스꽝스럽다. 중국이 시장경제 체제 아래서 보인 빠른 성장은 중국이 명령경제 체제 아래서 보인 음울한 성취와 비교돼야 한다. 수천만명을 굶어 죽이고 모든 시민들을 억압한 체제가 단지 시장경제를 채택함으로써 경제 발전과 인권 신장을 이루었다면, 시장경제의 우수성이 다시 증명됐다고 보아야지, 서양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도전이라고 보아선 안 된다.
중국이 이번 경제 위기를 잘 넘겼다는 사실이 중국 체제의 우월성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중국의 금융기관들은 중국 정부의 엄격한 통제 아래 움직이므로, 공황이 닥쳤을 때, 금융기관들은 정부 뜻에 맞춰 자금을 충분히 공급했다. 덕분에 공황이 이내 끝났다. 이처럼 중국 금융기관들이 중국 정부의 통제 아래 있다는 사실은 경제 위기에선 강점이 되지만, 바로 그 점이 중국 금융산업의 원시성을 말해준다.
시장경제의 힘을 중국의 경험만큼이나 잘 보여주는 것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경험이다. 최근까지도 이 지역은 경제 발전의 가능성이 가장 낮은 곳으로 꼽혔다. 그러나 경제자유화와 재산권의 확립을 통해 시장경제를 제대로 도입한 나라들은 놀랄 만큼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반면에 이 지역에서 가장 풍요로운 나라였던 짐바브웨는 재산권의 침해가 극심해진 뒤 가장 가난하고 억압적인 나라로 전락했다. (도표 참조)
진단이 정확하지 못하니, 처방이 알찰 수 없다. 시장의 몫을 줄이고 정부의 몫을 늘리라는 그의 처방은 바탕이 아주 허술하다. 정부의 몫이 늘어나고 시장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면, 경제엔 사회주의적 특질이 짙어질 수밖에 없어 사회의 활력이 줄어든다는 것은 역사와 이론이 충분히 증명했다.
세계적으로 정부는 커지고 시장은 위축된다. 사회가 원숙해지면, 퇴폐하게 마련이고 민중주의(populism)가 성하게 된다. 자연히 정부 지출과 세금이 늘어나서, 모두 ‘지대추구’에 매달리고 재산권의 침해는 심해지고 사회는 점점 활력을 잃고 계층들 사이의 갈등은 커진다. 지금 어려움을 겪는 남유럽 여러 나라들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시장은 진화가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곳이다. 가장 효율적인 생산 방식이 끊임없이 탐구되는 곳이다. 그래서 시장이 줄어들면, 사회는 정체할 수밖에 없다. 풍요한 사회를 위한 처방은 시장의 몫을 늘려 실험과 혁신이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좋은 책은 세상에 대해 말해주지만, 나쁜 책은 그저 저자 자신에 대해 말해준다. ‘자본주의 4.0’은 경제 현상에 대해선 제대로 설명하는 바가 적지만, 그의 편견에 대해선 유창하다. 그가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을 굳이 ‘시장 근본주의자들(market fundamentalists)’이라고 부른 데서 그가 미워하는 대상이 잘 드러난다. 지적 부정직과 편견들로 가득한 책이 널리 읽힌다는 사실은 책의 내용보다 이 세상의 모습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얘기해준다.
■ 소설가 복거일
△서울대 경제학과 △문화미래포럼 대표 △‘비명을 찾아서’ ‘보이지 않는 손’ 등 다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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