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옷만 바꿔 입으면 능사?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김정은 정치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1997년 창당해 우리 정당 역사상 비교적 길게 명맥을 이어온 한나라당 이름이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당 비상대책위원회가 26일 논란 끝에 당명을 개정키로 확정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민주당은 시민통합당 및 한국노총과 통합해 ‘민주통합당’으로 당명을 확정하는 과정에서도 진통이 많았다.
‘4·11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판에 정기 이벤트처럼 여겨졌던 선거 전 당명 바꾸기가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대선과 총선을 계기로 수많은 정당이 명멸하다 보니 그 이름을 다 기억하는 일조차 어렵다. 특정인의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해 당을 급조하는가 하면, 특정 지역에서 의석을 차지하기 위해 당을 새로 만드는 일도 다반사였다. 선거에서 패배하면 당 이름을 또 바꿔 ‘신장개업’하는 게 관례화되다시피 했다. 정치적 이해 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현상도 허다했다. 민주통합당의 한 관계자가 “민주, 통합, 대통합, 신당 등 웬만한 용어들은 다 써서 더 이상 쓸 당명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우리의 정당정치 역사가 일천한 것은 당 이름을 집권 전술에 이용되는 ‘간판’ 정도로 여기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이념이나 정책에 기반한 정치를 펼치지 못했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이 최근 정강에서 ‘보수’를 빼는 문제로 옥신각신한 것은 우리 정당의 뿌리가 얼마나 얕은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러다보니 당 이름을 바꾸는 것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응도 냉담할 뿐이다. 한 트위터리언은 한나라당의 당명 개정 소식에 대해 “총선을 앞두고 전멸할 것 같으니까 마음이 급해졌나 보다”며 “예전부터 많이 봐왔던 행태라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다”고 꼬집었다.
명패를 바꿔다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옷만 바꿔 입고 내용이 변하지 않으면 ‘꼼수’ 정치에 다름 아니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이 수없이 부르짖는 ‘국민 눈높이에 맞춘 당 쇄신’이 ‘개명 이벤트’는 아닐 것이다. 정당정치가 뿌리내리기도 전에 명패를 수없이 바꾸니, 정치 발전도 더뎌질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들에겐 정치가 그렇게 쉽고 가벼운가 보다.
김정은 정치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