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직원에 '올해의 賞'…재무 SW '골리앗' MS를 꺾다
“우리가 비슷한 제품을 내놓으면 당신네 회사 제품은 시장에서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1994년 재무 소프트웨어 업체 인튜이트는 마이크로소프트(MS)로부터 협박성 제안을 받았다. 회사를 15억달러(평가액)에 넘기라는 것이었다. MS가 제시한 가격은 시가총액 20억달러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MS가 으름장을 놓은 것은 비슷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MS의 지명도는 인튜이트를 단숨에 몰락 직전까지 몰고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인튜이트는 이런 제안을 거절했다. ‘IT 공룡’과의 정면승부를 선택한 것. MS는 1995년 인튜이트를 겨냥한 제품을 출시하며 격돌했다. 시장에서는 인튜이트가 MS의 공세로 인해 무너질 것이란 예상이 대세였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이다.

1983년 설립된 인튜이트는 개인 및 중소기업용 재무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한번도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빼앗긴 적이 없다. 1993년 상장 당시 20억달러를 밑돌던 시가총액은 122억달러로 늘었다.

◆‘고객이 원하는 혁신을 하라’

실패한 직원에 '올해의 賞'…재무 SW '골리앗' MS를 꺾다
스코트 쿡이 베인앤컴퍼니를 그만두고 인튜이트를 창업했을 때 시장에는 이미 46개의 개인 재무관리 소프트웨어가 있었다. 기존 재무 프로그램 가격은 최고 200달러 정도였다. 소비자들이 쉽게 쓰기에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게다가 선택사양도 많고 메뉴도 복잡해 사용하기도 쉽지 않았다. 업계의 관심은 싸면서도 쉽게 쓸 수 있고, 처리속도가 빠른 소프트웨어가 나오느냐 하는 것이었다.

인튜이트는 효율성을 높이는 데 승부를 걸기로 했다. 펜으로 쓰는 가계부처럼 쉬운 제품을 만들기로 한 것. “재무 프로그램은 사용하기 어렵다”는 고객들의 선입견을 없애자는 전략이었다. 인튜이트는 실용성이 떨어지는 메뉴를 과감히 없앴다. 선택사양도 대폭 줄였다. 대신 가격을 기존의 제품의 3분의 1 수준으로 낮춘 ‘퀵큰(Quiken)’이라는 개인용 프로그램을 시장에 내놨다. 1986년의 일이다. 퀵큰은 2년 뒤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개인뿐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퀵큰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중소기업 고객이 점차 늘어나자 인튜이트는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에도 진출키로 했다. 퀵큰에 익숙한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면 장사가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어 ‘퀵북스(Quikbooks)’라는 기업용 회계관리 시스템을 내놓았다. 예상은 적중했다. 시장조사업체 NPD그룹에 따르면 퀵북스의 지난해 시장점유율은 94.2%에 달했다. 퀵북스는 작년 인튜이트 전체 매출의 37%를 차지하는 효자상품으로 성장했다.

◆‘때론 전부를 걸어라’

기술과 혁신이 있다고 시장점유율이 자동으로 따라오는 건 아니다. 인튜이트는 성장을 위해 필요할 땐 과감하게 승부했다. 인튜이트는 퀵큰 판매 초기 몇 개 은행과 제휴해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지만, 손익분기점을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당시 도매건 소매건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유통업체는 퀵큰의 제품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인튜이트의 고민은 수중에 10만달러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미디어를 활용해서 광고를 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실패한 직원에 '올해의 賞'…재무 SW '골리앗' MS를 꺾다
인튜이트는 마케팅 방법을 고민한 끝에 전문잡지에 집중하기로 결론내렸다. 고객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접점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자금 10만달러를 모두 털어 10여개 전문잡지에 광고를 시작했다. 그 결과 당초 예상의 3배가 넘는 매출을 올렸다. 수요가 급증하자 유통업체들은 제품을 매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MS가 인수를 시도할 때도 인튜이트는 정면으로 승부했다. 인튜이트는 당시 매킨토시와 도스용 퀵큰을 판매하고 있었다. MS가 ‘MS 머니’를 출시하자 윈도용 퀵큰을 내놓고 격돌했다. 윈도용 퀵큰으로 MS 머니를 꺾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윈도가 MS의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튜이트는 고객 혜택을 늘리고 기존 유통망에 확실한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매장에서 제품을 사면 15달러를 돌려받을 수 있는 쿠폰을 제품에 붙여 판매했다. 당시 인튜이트는 소프트웨어 업체 중 처음으로 이 전략을 사용했다. MS머니 출시 후에는 도매가격을 4달러 내렸다. MS는 결국 인튜이트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인튜이트가 전면전에서 승리한 것이다.

◆실패자에게 상을 지급

인튜이트 직원들은 실패했을 때 상을 받는다. 실패에서 배우는 점이 더 많다고 판단, 인튜이트는 매년 ‘올해의 실패상’을 시상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인튜이트의 급여 소프트웨어인 터보택스 사업부문 담당 매니저는 2005년 젊은층을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수백만달러를 들여 연예인을 동원한 마케팅을 실시했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회사는 그를 인사부서로 호출하지 않았다. 처음 주도한 마케팅 프로젝트에서 실패한 그에게 회사는 ‘올해의 실패상’을 수상하고, 현장으로 보내 원인이 무엇인지 확인하도록 했다.

원인은 젊은층의 성향에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세금을 정리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고 환급받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점을 몰랐던 것이다. 담당 매니저는 세금 정리 항목을 간소화하고 환급액을 자세히 표시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다시 설계했다. 이후 터보택스를 찾는 고객이 증가했고, 시장점유율은 지금도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스코트 쿡 회장은 “실패를 해봐야 중요한 것을 알게 되고, 다음번에 성공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인튜이트는 설립 후 연평균 35%가 넘는 고속 성장을 해왔다. 그 비결은 차별화된 혁신과 과감한 승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조직문화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정성택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