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필하모닉이 名家인 이유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국내 공연이 줄을 잇고 있다.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이 지난해 11월 내한 공연을 한 데 이어 내달에는 네덜란드의 로열 콘세르트헤보가 한국에 올 예정이다. 이들 오케스트라는 근대적 교향악단의 모습을 갖춘 19세기 이래 100년 넘게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은 음악적인 면에서도 훌륭하지만, 오랜 기간 독보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업 경영에 던져주는 시사점도 크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갖는 경쟁력의 원천은 단원 개개인의 ‘장인정신’이다. 장인정신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창조성과 개척정신을 발휘하는 자세나 태도를 의미한다. 베를린 필하모닉이나 빈 필하모닉과 같은 명가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우수한 실력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음악을 보여주려는 예술적 열정으로 가득차 있다.

로열 콘세르트헤보의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는 “연주자 개개인이 악보의 이면에 숨어 있는 의미까지 독창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한다”며 “훌륭한 영화배우가 극중 인물의 내면을 연기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명가 오케스트라는 정상급 연주자를 선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들이 입단한 뒤에도 꾸준히 기량을 갈고 닦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평소 2인 이상의 소규모 합주단을 뜻하는 ‘앙상블’을 이뤄 실내악 활동을 한다. 정기 공연이 없더라도 동료 연주자들과 꾸준히 연주활동을 하면서 실력을 쌓는 것이다. 140명 규모의 베를린 필하모닉에는 30여개의 실내 악단이 있으며, 모든 단원들이 하나 이상의 악단에 속해 있다.

정상급 오케스트라의 비결로 명지휘자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훌륭한 연주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예술적 통찰력과 열정, 리더십을 갖춘 지휘자가 있어야 한다. 지휘자의 실력이나 지명도에 따라 오케스트라에 대한 평판이 달라질 정도로 지휘자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명가 오케스트라는 창단 초기부터 당대 최고의 실력자를 지휘자로 영입해 명성을 얻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21세기의 카라얀(전 베를린 필하모닉 종신 음악감독)’으로 불리는 사이먼 래틀이 이끌고 있고, 로열 콘세르트헤보의 마리스 얀손스는 1996년 연주 도중 일으킨 심장마비를 극복하고 현역 최고의 지휘자로 우뚝 섰다.

명가 오케스트라는 전 구성원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가려는 장인정신을 가질 때 조직의 경쟁력이 극대화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직 구성원 대다수가 방관자로 머문 상태에서 소수 경영진의 독려만으로는 기업이 경쟁력을 높이기 어렵다.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처럼 동료 간의 교류와 자율적인 팀 활동도 구성원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경영진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개개인의 노력을 조직 차원에서 통합하고 시너지를 창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실력과 열정을 갖춘 인재와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리더십이 어우러질 때 기업은 남들이 모방할 수 없는 차별적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고현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hc.kho@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