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그리스 채권단 부채탕감안 거부…2차 구제금융 중단 위기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무장관들이 그리스 정부와 민간 채권단에 국채 손실률 협상을 다시 하라고 요구했다. 헤어컷(탕감) 비율이 기대치보다 낮다는 이유에서다. 채권단은 “재무장관들이 일방적으로 협상 내용을 뒤엎는 것은 ‘채권단의 자발적 참여’라는 원칙을 훼손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채권단 대표들이 그리스 정부와 새 국채 금리를 연 평균 4%로 잠정 합의하고 이를 23일 열린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로존 재무장관들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새 국채 금리가 연 3.5%를 넘어선 안 된다며 채권단과 그리스 정부에 협상 재개를 지시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지난해 10월 채권단은 기존 그리스 국채를 30년 만기 장기채권으로 교환해 주기로 그리스 정부와 합의했다. 새 국채에 적용되는 금리가 높아질수록 채권단의 손실률은 낮아진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새 국채 금리가 연 4%일 경우 헤어컷 비율은 70%, 연 3%일 경우 이 비율이 73%가 될 것으로 추산했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채권단이 손실을 적게 볼수록 각국 정부의 부담은 그만큼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국가부채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60%인데 이를 2020년까지 120%로 낮춰야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면할 수 있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채권단이 제시한 헤어컷 비율로는 부채 규모를 제대로 줄일 수 없어 각국 정부가 더 많은 돈을 내야 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채권단은 지난해 10월 유로존 재무장관들과 헤어컷 비율을 50%로 한다고 합의했기 때문에 이를 70%까지 높인 것만으로도 많은 양보를 해줬다는 입장이다. 채권단 대표인 찰스 달라라 국제금융협회(IIF) 회장은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질지는 유로존과 IMF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유로존이 채권단에 더 많은 손해를 볼 것을 요구한다면, 채권단 중 일부가 자발적 참여를 거부할 수 있다는 엄포를 놓은 것이다.

다급해진 것은 그리스다. IMF는 그리스가 채권단과 헤어컷 비율에 대해 합의하지 못하면 올해부터 제공하기로 한 2차 구제금융(1300억유로)을 줄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리스는 3월20일 145억유로의 국채 만기가 돌아오는데, 구제금융을 받지 못하면 만기 연장을 할 수 없어 디폴트를 선언하게 된다. 로이터통신은 그리스 정부가 유럽연합(EU) 정상회담이 열리는 30일 이전까지 협상을 끝마친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전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