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집단소송에 예산 주는 정부…업계 "소송 남발 부추겨"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 담합에 대한 소비자 집단소송에 처음으로 예산을 지원키로 결정했다.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부담이 그만큼 줄어 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손해배상 청구가 급증할 전망이다.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 등 담합 적발 수단의 실효성 및 허위 담합증거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소송 남발로 기업의 경영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피해소비자 모집비용 지원

공정위 관계자는 “녹색소비자연대전국연합회(녹소연)가 진행 중인 삼성·LG전자의 제품 담합에 대한 소비자손해배상 소송에 모집경비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24일 말했다.

공정위가 담합이나 부당표시·광고에 따른 소비자 손해배상소송 지원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2008년과 2009년 출고가 인상 및 판매 장려금 축소 등의 방법으로 세탁기·평판TV·노트북PC 가격 인상을 담합해 공정위로부터 최근 446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녹소연은 두 회사 담합으로 소비자 선택권이 축소되고 가격이 올라 소비자피해가 발생했다며 민사소송인단을 모집하고 있다. 공정위는 녹소연이 내달 말까지 피해소비자를 모집하는 데 필요한 온라인 광고비 등 경비 일부를 지원하게 된다.

○“리니언시 보완 제도로 활용”

공정위는 작년 말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담합 및 허위광고 피해에 대한 집단손해배상 소송 지원 관련 예산으로 올해 1억원을 확보했다. 소비자 단체의 신청을 받아 피해자 수, 피해규모 등을 고려해 파급 효과가 큰 사건에 대해 우선 지원할 방침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업은 리니언시를 통해 담합 과징금을 감면받는다”며 “이를 보완하고 담합을 사전에 억제하기 위해 집단손해배상 소송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편성된 예산 규모를 감안하면 올해 10건 정도의 집단소송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단소송 남발 우려

집단소송 지원을 통해 담합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구제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게 공정위의 구상이다. 하지만 업계는 집단소송 모집비용을 정부가 예산을 들여 지원함에 따라 불필요한 소송이 남발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하고 있다.

예컨대 담합 혐의를 받은 업체들은 과징금을 면제 또는 감면받는 리니언시를 적용받기 위해 담합 증거가 명확하지 않더라도 경쟁적으로 자진신고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담합으로 인한 소비자 손해배상 소송이 자주 제기될 가능성이 커 관련 업계는 예상하지 못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액화석유가스(LPG), 기름값, 보험료 등 리니언시로 적발된 대형 담합 사건을 보더라도 실제 담합 이행 여부에 대한 주장이 업체끼리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며 “담합에 참여하지 않은 업체들마저 억울하게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사소송의 당사자인 기업과 소비자 가운데 정부가 일방적으로 소비자 편을 드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집단소송이 소비자피해를 구제한다는 순기능도 있지만 기업 입장에선 소송 남발로 인한 비용 증가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