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파산 자문료만 1조7000억원…구조조정, 산업이 되다
2008년 문을 닫은 투자은행(IB) 리먼브러더스. ‘가장 크고 제일 비싼 파산’이란 기록을 갖고 있다. 파산보호(챕터11)를 신청한 뒤 법원으로부터 채무상환 계획을 승인받은 지난해 12월까지 3년3개월간 리먼브러더스가 로펌과 컨설팅 회사 등에 지급한 자문료는 총 15억달러(1조7000억원). 매달 평균 지급한 4100만달러는 컨설팅 회사와 로펌이 리먼브러더스 23개 자회사의 주주 및 채권 채무자 등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협상과 자문을 해준 대가였다.

컨설팅 회사의 파트너 1명이 한 달간 사용한 리무진 비용만 2100달러에 달한 경우도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3년간 월스트리트에서 이렇게 바쁘고 화려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골드만삭스 등 기존 월가의 주인공들이 금융위기로 된서리를 맞으며 떨고 있는 사이 소위 ‘구조조정 전문’ IB, 컨설팅 회사, 로펌들이 월가의 주류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구조조정산업 급부상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MBA)인 와튼스쿨은 2005년부터 매년 2월 ‘구조조정 콘퍼런스’를 개최하고 있다. 구조조정 업계의 동향과 취업 정보를 나누는 행사다. 적어도 2008년 이전까지 MBA 졸업생에게 구조조정 콘퍼런스는 관심 밖의 이벤트였다. 골드만삭스 등 대형 IB에 취직하거나 시장이 큰 헤지펀드에 가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열린 7회 행사에는 업계 관계자들과 학생 1000여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예상 인원을 세 배나 초과해 주최 측은 당초 예약했던 리셉션 장소를 큰 곳으로 옮겨야 했다.

파산보호를 신청한 기업들에 채무 상환, 턴어라운드 등과 관련한 각종 자문을 제공하는 소위 ‘구조조정 산업’은 과거 월스트리트에서 주목받던 업종이 아니다. 잠시 찾아오는 불경기 때 반짝 돈을 버는 ‘틈새 아이템’이어서 산업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보기술(IT) 거품이 꺼진 10여년 전부터 월가에서 전문성을 갖춘 회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인 차입 축소(디레버리징)가 ‘뉴 노멀(new normal)’이 되면서 하나의 산업으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구조조정 전문 IB인 로스차일드의 마이클 정 이사는 “과거 일반 IB가 5년, 구조조정 전문 IB가 1년의 호황을 누리는 사이클이었다면 이제는 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톰슨로이터는 2009년부터 산업의 규모와 업체 순위를 조사해 발표하기 시작했고 구조조정 업계만 전문으로 다루는 미디어(Debtwire)까지 생겨났다.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2011년 전 세계 구조조정 채권 규모는 5445억달러로 2010년 2778억달러에 비해 2배로 늘어났다.

○월가 인재들의 탈출구

월스트리트에서 유일하게 성장하는 산업이다 보니 인재들도 몰리고 있다. ‘빅3’ 구조조정 전문 IB로 불리는 라자드, 로스차일드, 블랙스톤에는 MBA 졸업생부터 일반 IB의 경력직까지 월가 인재들의 이력서가 쌓이고 있다.

UBS에서 투자은행 부문 회장을 역임한 켄 몰리스는 일반 IB업계에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한 2007년 회사를 그만두고 몰리스앤코라는 구조조정 전문 IB를 직접 세우기도 했다. 이 회사는 주로 채무 기업을 상대로 자문을 제공하는 빅3와 달리 채권자들에게 자문해주면서 빅3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IB로 성장하기도 했다.

돈 벌 곳이 없어진 골드만삭스 등 일반 IB들도 이 시장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정 이사는 “일반 IB들은 인수 주선 업무(언더라이팅)를 하기 때문에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주식이나 채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자신들이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하는 구조조정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백화점식 영업을 하는 유니버설 뱅크들이 쉽게 진입할 수 없는 전문 영역으로서 자체적인 성장을 해나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IB뿐 아니라 구조조정 전문 컨설팅사와 로펌들도 월가에서 확고한 위상을 구축했다. 컨설팅사로는 알릭스파트너, 알바레즈&마살, FTI컨설팅 등이 빅3다. 와일, 갓살&멘지스와 커클랜드&엘리스는 구조조정 업계의 양대 로펌으로 꼽힌다.


◆ 구조조정 산업

부실기업 채권에 투자해 기업을 회생시키는 동시에 수익을 얻거나, 파산보호를 신청한 기업에 채무상환과 관련한 각종 자문을 제공하는 산업이다. 크게 자문 부문과 투자 부문으로 구분된다. 투자 부문은 주로 부실채권(distressed debt)에 투자한 후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 기업을 턴어라운드시켜 수익을 얻는 사모펀드 등을 일컫는다. 자문 부문은 채권자들과 만기연장 채무탕감 등의 협상을 벌이는 투자은행(IB), 경영 컨설팅을 제공하는 컨설팅 회사, 파산 관련 법률 자문을 제공하는 로펌 등 세 가지 업종으로 나뉜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