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14억명 민족 대이동, 절정 치닫는 中 춘제…대륙은 '붉은 물결'
[특파원 리포트] 14억명 민족 대이동, 절정 치닫는 中 춘제…대륙은 '붉은 물결'
요즘 베이징 시내는 붉다. 거리 곳곳에 붉은색 덩룽(燈籠)이 걸리고, 집 대문에는 붉은색 바탕에 노란색 글씨의 춘롄(春聯·복을 기원하는 문구)이 나붙었다. 백화점 등 쇼핑가에는 녠훠(年貨·설맞이 용품)를 파는 붉은색 간판의 임시 상점이 들어섰고 ‘춘제(春節)서곡’ ‘궁시파차이(恭喜發財·돈 많이 버세요)’ 등 흥겨운 노래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지난 8일부터 귀성객들이 한꺼번에 길거리로 나서면서 중국의 하늘과 땅길은 초만원이다. 성급한 사람들은 벌써부터 밤마다 폭죽을 쏘아올린다. 섣달 그믐인 추시(除夕)와 정월 초하루인 춘제가 임박하면서 14억인구의 지구촌 최대 축제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14억명 대이동

춘제가 다가오면 버스터미널 공항 기차역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다. 지난 18일 주로 동북지방으로 가는 기차의 출발지인 베이징역 광장도 귀성객들로 붐볐다. 광장에 도착해 개찰구를 지나 플랫폼까지 가는 데 최소 30분이 걸렸다. 철도부에 따르면 이날 베이징역 이용객만 12만명에 달하는 등 연인원 40만명이 베이징을 떠났거나 들어왔다.

중국 정부가 추산한 올해 춘윈(春運)기간(설 연휴 운송 기간·1월8일~2월16일까지 40일) 이동 인구는 연인원 31억5800만명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매일 8000만명이 움직이는 셈이다. 베이징시도 연인원 3700만명이 고향을 찾거나 여행을 떠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춘윈의 70%를 책임지는 기차표를 올해도 암표상들이 선점해 귀성객들의 불만이 높다. 중국은 올해부터 기차표 실명제를 도입했지만 이미 선양에서만 700명의 암표상들이 검거되는 등 허점을 노출하고 있다. 이들은 역 근처에서 정상 요금의 1.5~2배에 표를 팔며 공안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베이징 서역에서 신장 우루무치까지 가는 고속열차표 가격은 316위안(5만7000원). 이동 시간은 하루 꼬박하고도 9시간51분이 더 걸린다. 반면 4시간 걸리는 비행기표 가격은 농민공 한 달 월급에 가까운 2500위안이 넘는다. 베이징에 사는 우쉰 씨는 “버스는 너무 느리고 비행기는 너무 비싸다”며 “거리가 멀어도 기차를 타고 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대 40일간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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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 크리스마스 시즌이 있다면 중국에는 춘제훠둥(春節活動)이 있다. 춘제훠둥은 춘제를 전후해 묵을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일(辭舊迎新)을 말한다.

춘제훠둥은 음력 12월 초파일(12월8일)부터 시작된다. 이날은 라바저우(臘八粥)를 먹는다. 쌀 좁쌀 찹쌀 수수 팥 대추 등 온갖 곡식을 넣어 끓인 죽인데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음력 12월23일에는 부뚜막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이날 홍등을 대문에 걸고 폭죽을 터뜨린다. 24일 대청소, 25일 두부·콩 갈기, 26일 고기 삶기, 27일 닭 잡기, 28일 국수 만들기, 29일 만두 찌기 등 춘제 준비가 이어진다.

30일부터가 춘제의 절정이다. 오전에는 집안에 녠화(年畵)라는 그림을 붙이고, 대문에는 춘롄과 ‘복’(福)자를 거꾸로 붙인다. ‘복’자를 거꾸로 붙이는 것은 ‘거꾸로’라는 뜻의 중국어 다오(倒)와 ‘오다’라는 뜻의 중국어 다오(到)의 발음이 같아 생겨난 풍습이다. 거꾸로 붙여야 ‘복이 온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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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온 가족이 모두 모여서 녠예판(年夜飯)이라는 식사를 한다. 요즘은 녠예판을 파는 고급식당도 많아 10인분에 우리 돈으로 수백만원, 수천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녠예판을 먹은 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거나 마작을 하면서 밤을 새운다.

자정이 되면 천지를 뒤흔드는 폭죽소리가 춘제를 알린다. 폭죽놀이는 사악한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로 행해졌지만 춘제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춘제 아침에는 주로 만두를 먹는다. 만두 속에 동전이나 설탕을 넣는다. 이를 씹는 사람은 돈을 많이 벌거나 한 해를 달콤하게 살게 된다고 믿는다. 아침식사 후에는 이웃으로 세배를 다닌다. 어른들은 훙바오(紅包)라는 붉은 봉투에 세뱃돈을 넣어 아이들에게 준다.

정월 초사흗날은 결혼한 여인들이 남편과 함께 친정을 방문하는 날이다. 상점들은 주로 정월 초파일에 문을 연다. 역시 폭죽을 터뜨리는 것으로 개업을 알린다. 정월 대보름인 위안샤오제(元宵節)는 춘제훠둥의 대미를 장식하는 날이다. 찹쌀 경단인 ‘위안샤오’를 먹으면서 폭죽을 터뜨린다. 이날은 폭죽을 터뜨리는 마지막 날이어서 세상이 불꽃놀이쇼로 시끄럽다.

○황금연휴 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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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중국 정부가 공표한 춘제 연휴는 22~28일까지 7일간. 대신 21일 토요일과 29일 일요일에 정상근무를 권고했다. 그러나 말 그대로 권고사항일 뿐 중국인들의 실제 춘제 연휴는 짧으면 2주, 길면 4주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중국은 물론 해외까지 춘제 특수로 들썩인다.

중국인들은 춘제 기간에 통이 커진다. ‘1년을 절약하더라도 명절은 제대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춘제 공식 연휴 1주일 동안 중국의 소매판매액은 전년보다 18.9% 늘어난 4045억위안(72조원)에 달했다. 백화점 1주일 매출이 평소 한 달 매출에 육박했다. 중국여행국은 올해 춘제기간 전국 관광객 규모가 1억85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관광 수입만 1000억위안으로 지난해에 비해 21.9%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춘제로 안절부절 못하는 곳도 있다. 매년 춘제 연휴가 끝난 후 직원들이 복귀하지 않아 인력난에 시달리는 기업들이다. 광둥성 주장삼각주 기업들은 매년 춘제 후 미복귀 인력이 30% 가까이 된다. 그래서 올해는 춘제 전에 직원들에게 선물을 사주고 보너스 지급을 미루는 기업도 크게 늘었다.

베이징=김태완 특파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