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가족, 逆고부갈등을 넘어
올해도 어김없이 설 명절을 기해 민족의 대이동이 꼬리에 꼬리를 물 것이다. 명절 때마다 고개 들던 ‘명절 증후군’은 비단 우리네 고충만은 아닌 듯하다.

서양에서도 ‘명절 신드롬’이란 것이 있어, 명절을 전후해 정신과 의사나 가족 상담사를 찾는 이들이 부쩍 증가한다고 한다. 이유인 즉 자신이 생각하는 가족의 아름다운 이상과 자신이 경험하는 가족의 고통스러운 현실 사이에 간극이 커지면서 스트레스가 고조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가족이란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보다 무엇을 말해선 안 되는가를 둘러싼 규범이 보다 정교하게 발달된 제도임에 틀림없다. 덕분에 가족을 일컬어 ‘문화적 위선’이라 칭하는 학자도 있고, 과도하게 ‘신비화된 제도’라 비판하는 시선도 있다.

우리 가족도 한동안 며느리 명절 증후군이 대중매체를 장식하곤 했는데, 요즘 기류 속엔 다소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는 듯하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역(逆)고부갈등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신세대 며느리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난 시금치도 싫어. ‘시’자 들어가는 건 다 싫어” 투정이요, 시어머니들이 자리를 함께하면 “우리 사위 얼마 버는지는 소상히 아는데 아들 녀석 몇 푼 버는지는 도통 모르겠다”는 하소연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고 한다.

명절 때면 며느리에게는 더 있다 가라 붙잡으시면서 딸네는 왜 안 오나 목 빼고 기다리시는 시어머니를 향한 야속함은 며느리 불평의 단골 목록이다. 그런가 하면 딸네 가셔서 사위가 팔 걷어붙이고 부엌에 들락거리는 모습을 보면 기특하다고 등 두드려주시면서, 행여 아들이 빨래나 설거지하는 모습 들키기라도 하면, ‘내가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 싶어 머리 싸매고 누우시는 시어머니를 향한 서운함 또한 며느리 불만의 단골 목록이라지 않던가.

실상 시어머니 세대의 이중의식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당시 공신력 있는 조사기관에서 여성 지도자를 대상으로 의식조사를 하면서, “당신 딸이 당신처럼 성공하길 바라십니까?”라고 물었다.

거의 100%에 가까운 응답자가 “적극 동의한다” “동의한다”에 답했다. 뒤이어 “당신 아들이 내조받길 원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이번에도 거의 100%에 가까운 응답자가 두 손 들어 환영을 표했음은 물론이다.

이른바 의식이 깨어 있다고 자처하는 여성 지도자들조차 ‘당신 딸이 사돈 댁 며느리요, 당신 며느리가 사돈 댁 딸임’에도 ‘딸은 성공하고 아들은 내조받길 원하는’ 이중의식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하고 있었던 셈이다.

확실히 우리네 인간관계는 역할중심적이라 불러 큰 무리가 없는 만큼 시어머니는 늘 시어머니 입장을 고수하고, 친정어머니는 항상 친정어머니 역할에 충실하다. 상대방 입장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나 처지가 같다 할 순 없기에 양보할 수 없다는 인식이 사돈 사이에 견고한 벽을 쌓고, 나도 예전엔 며느리였기에 며느리 마음 헤아리지 못할 건 없겠으나, 나 고생한 것에 비하면 네 고생은 고생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정서가 고부 사이의 거리감을 확대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이 대목에서 문화권에 따라 가족갈등 양상이 다양하게 펼쳐진다는 문화인류학자들의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 듯싶다. 실제로 부계 모계 구분 없이 양계제를 채택하고 있는 서구에선 고부갈등 대신 ‘장모-사위’ 갈등이 심각한 반면, 주로 부계 친족제도를 갖고 있는 유교 문화권에서 ‘시어머니-며느리’ 갈등이 깊게 뿌리 내려왔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제 부계의 규범은 남아 있지만 일상에서는 부계냐 모계냐의 구분을 넘어 양계제적 성향이 확산되고 있을진대, 고부관계 역시 해묵은 갈등과 이중의식의 한계를 훌쩍 뛰어 넘어 ‘여자와 여자의 유대’로 승화되길, 올해도 어김없이 꿈꾸어본다.

함인희 < 이화여대 사회학 교수 hih@ewh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