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대기업 지원 꺼리는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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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경제부 기자 selee@hankyung.com
수출입은행은 동일인 대출 한도를 자본금(7조원)의 40%, 동일계열 한도는 자본금의 50%로 제한하고 있다. 특정 기업에 2조8000억원 이상, 특정 계열그룹에 3조5000억원 이상 대출해주면 안 된다는 ‘상한선’을 뒀던 셈이다.
수출입은행·재정부·금융위 등은 이날 동일인 대출한도는 자본금의 60%로, 동일계열 한도는 80%로 각각 높이자고 제안했다. 3개 기관이 모두 동의한 만큼 특별한 문제는 없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청와대가 제동을 걸었다. 청와대는 수출입은행의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 관계자는 “수출입은행이 동일인 여신한도를 늘리면 그 혜택을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대기업’이 가져가기 때문에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청와대가 일단 보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을 키우자는 상생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맞는 말이다. 현대중공업계열과 삼성중공업계열에 대한 수출입은행 대출은 2조~3조원 수준으로 거의 상한선에 다다랐다. 2000년대 들어 국내 조선업체들이 세계시장을 호령하며 덩치를 키우고 선박 수주량을 늘린 결과다. 일시적으로 대출금액이 상한비율을 초과하는 바람에 수출입은행이 감사원 지적을 받은 적도 있다. 동일인 여신 한도 상향은 이들 ‘대기업’에 추가 대출이 가능해지도록 숨통을 틔우려는 측면이 있다. 예금기능이 없고 정부가 보증하는 ‘특수은행’이긴 하지만 어쨌든 은행인 만큼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문제는 청와대의 인기 영합적인 태도다. 선거를 앞두고 국민들 입맛을 고려해 판단을 보류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수출입은행의 한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에 대한 추가대출을 해 주지 않으면 거기 딸려 있는 수많은 중소기업들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대기업 지원과 중소기업 지원은 그렇게 간단히 나뉘는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상은 경제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