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제재 반대하는 중국도 상당폭 감축했다"
정부 대책 마련 `고심'..시간 두고 협상 이어갈 듯

로버트 아인혼 미국 국무부 대북ㆍ대이란 제재 조정관이 우리 정부에 이란산 원유수입 감축 조치를 강하게 요구함에 따라 정부가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아인혼 조정관은 신중한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한국이 이란 제재에 동참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고강도 압박을 해왔다.

정부도 이란 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원유 수입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견해이나 감축폭이 지나치게 크면 국내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협의 과정에서 상당한(significant) 감축을 희망하는 미국과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한국간의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제재 동참 고강도 압박 = 아인혼 조정관은 17일 오전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가진 김재신 외교부 차관보와의 면담에서 "우리를 돕는 모든 파트너에게 이란산 원유 구매를 줄이도록 권고하고 있다"며 한국의 동참을 촉구했다.

특히 이란 핵과 북한 핵은 연결된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북핵 당사자인 한국의 참여를 압박했다.

비공개회의에서도 아인혼 조정관 등 미국 대표단은 사실상 이란산 원유 금수조치를 의미하는 국방수권법의 내용과 향후 이행계획을 설명하면서 우리 정부에 협조를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미국이 북핵 문제까지 거론하며 제재 동참을 요구한 것은 갈수록 심각해 지고 있는 이란 핵 문제 대처를 위해 국제사회의 단합을 끌어낼 필요성이 절박하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인혼 조정관은 공개 발언을 통해 "이란은 우라늄 농축을 진행해 지금 (농축도가) 거의 20% 수준에 도달했고 이는 이란이 핵무기를 갖출 수 있는 능력에 근접했음을 의미한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국제사회가 이란에 대해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핵 프로그램을 막을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이란산 원유수입 비율이 10%에 달하는 한국의 동참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정부 감축폭 고민..대체수입선 확보에 분주 = 정부는 미측의 요구를 수용, 단계적으로 이란산 원유수입을 감축하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나 감축폭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이날 만남에서 국방수권법의 '유예' 혹은 '예외'로 인정받을 수 있는 원유 수입량 감축폭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됐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기존 국방수권법이 명시한 '상당한' 감축은 적어도 20% 이상을 뜻하지 않겠느냐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특히 이란 제재에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중국 조차도 최근 이란산 원유 수입을 거의 50% 가까이 줄이고 있는 상황임을 미 대표단이 언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의 요구폭이 그와 맞먹는 규모가 아니겠느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들은 아직 숫자를 얘기할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정부 당국자는 "오늘은 주로 우리 측에서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국방수권법 시행 시점이 180일 이후인 점을 고려할 때 한미간 협의는 앞으로도 몇 달 동안 이어지게 될 것인 만큼 이날 논의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향후 정부의 대응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뤄질 전망이다.

예외나 유예 인정을 받기 위한 감축률 협상을 미국과 벌여나가고 다른 한편에선 대체수입선 확보에 나서는 것이다.

감축률 협상에서는 주변국 동향 파악도 중요하다.

이란산 원유 점유율은 세계 시장에서 5% 안팎이며 중국, 인도, 일본, 한국이 주요 수요처인 만큼 우리로서는 일본의 움직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는 감축률을 최소화하고 줄이더라도 단계적으로 하겠다는 입장이다.

일시에 줄일 경우 국내 원유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 수입선으로는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등이 거론되고 있다.

오만에 대해선 김황식 총리가 지난 14일 방문해 액화천연가스(LNG)와 원유의 안정적인 수급을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 국내 금융기관이 국방수권법이 정한 제재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미측에 적극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ho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