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우칸의 기적과 중국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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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 베이징 특파원 twkim@hankyung.com
지난 15일 이 마을 주민 린쭈롄(林祖戀·67)이 우칸촌 당위원회 서기로 선출됐다. 그는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던 범법자였다. 그런 그가 마을 최고위 자리에 오른 것은 마을 주민들이 일치 단결해 반(反)부패 투쟁을 승리로 이끈 덕분이다.
조용한 농촌 마을 우칸촌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해 9월 하순. 공무원들이 마을 공동소유 토지를 개발업자에게 터무니없이 싼 값에 팔아넘기자 이에 항의하는 농민들의 시위가 발생했다. 초기에는 수많은 중국 농촌마을에서 발생하는 흔한 시위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초 경찰에 연행됐던 시위 지도자가 의문사하면서 우칸촌의 시위는 소요 사태로 발전했다.
우칸촌 사태는 인터넷과 서방언론 등을 통해 퍼져 나갔고, 광둥성 정부는 농민들에게 협상의 손길을 내밀었다. 당시 주민들과 협상을 벌인 주밍궈 광둥성 부서기는 “민주주의와 평등, 권익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며 “정부가 부패를 척결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광둥성 정부는 토지 매매과정의 비리를 철저히 조사하고, 마을 주민에게 당의 권력을 돌려주는 결단을 내렸다. 중국 정부가 불법시위를 벌인 농민들의 요구를 전폭 수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일부에서는 내년 상무위원 진입을 바라보고 있는 왕양 광둥성 서기가 사태를 봉합하기 위해 서둘러 농민들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 내에서 조차 “우칸의 모델은 토지분쟁 해결에 획기적인 사건이 될 것”(역사학자 장리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신리 국제경제교류센터 부이사장도 “개혁·개방 이후 농민의 이익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온 게 사실”이라며 “토지판매 수입을 농민에게 더 많이 분배하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중국에는 62만5000여개의 잠재적인 우칸이 있다”며 “우칸의 혁명은 중국 농촌운동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태완 베이징 특파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