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유니폼을 입게된 이대호 선수는 한국 야구의 간판 타자다. 프로 11년 통산 평균 3할대 타율에 홈런왕도 여러 차례 차지했다. 오릭스는 그에게 2년간 105억원을 주기로 했다. 그렇다면 이대호보다 타율이 1할 정도 낮은 타자들의 연봉은 얼마나 될까. 경력이나 타격 스타일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10타석, 평균 두 게임을 기준으로 고작 안타 한 개의 차이일 뿐인데 연봉은 천양지차로 벌어진다.

1 대 99의 양단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 정보화 혁명으로 새로운 산업이 태동하고 제품과 서비스의 라이프 사이클이 짧아지기 때문이다. 일본 증시 상장으로 3조원대의 주식자산을 일군 넥슨의 김정주 회장이나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처럼 거부를 움켜쥔 인물들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물론 이런 기회가 모든 사람을 향해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없기에 경쟁의 대열에서 떠밀려난 이들의 좌절감과 박탈감은 크다. 서민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고 청년 취업난이 심화되는 요즘은 더욱 그렇다. ‘나꼼수’ 등과 같은 좌파 진영은 이 틈을 타 우리 사회를 ‘1%의 승자와 99%의 패자’로 일도양단하고 있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그 ‘1%’를 탐욕의 집단으로 몰아세우며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고 있다.

얼마 전 소설가 공지영 씨가 나꼼수 해외공연 동행 길에 샤넬백을 들었다고 해서 논란이 일었다. “99%를 대변한다는 진보진영 인사가 명품백을 들고다닐 수 있느냐”는 시비였다. 그는 문제의 백이 샤넬백이 아니라고 해명한 뒤 “대한민국에서 젤 돈 잘 버는 작가 망신!!”이라는 트위트를 날렸다. 공씨가 뭣 때문에 ‘망신’이라는 표현을 썼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의식 강하기로 이름난 그가 이미 몰개성화돼버린 샤넬과 ‘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불쾌했을 수도 있다.

‘탐욕’ 함부로 말하지 말라

그는 1998년 문학평론가 강영희 씨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예전에는 책이 너무 잘 팔리는 것이 미안했고 중산층에서 자란 것도 미안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대신 많이 가진 만큼 더 베풀면 된다고,나눠줄 게 더 많이 생긴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기자는 1980년대를 살았던 한 젊은이가 내적 고민을 통해 길어올린 나름의 진정성이라고 믿는다.

공씨는 개인적으로 1000만부 판매돌파를 목전에 둔 문학·출판계의 확고한 ‘상위 1%’다. 하지만 이대호 선수와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그에게 ‘탐욕’이라는 잣대를 씌우지 않는다. 승자독식 구조를 향유하고 있다고도 하지 않는다.

보다 나은 삶을 향한 개인의 욕구와 이기심에 대해 남의 것을 약탈하는 탐욕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무지가 낳은 오해다. 우리 일상에서 매일 일어나는 거래의 대부분은 실제로는 탐욕과는 정반대의 이유로 발생한다. 상대방에게 이익을 주지 않으면 거래가 성립될 수 없다.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누구도 거래에 응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유 시장경제의 요체다. 그런데도 탐욕이라는 단어는 요즘 의도적으로 남발되고 있다. 누군가 샤넬백을 가졌다고 해서 프랑스 샤넬사의 ‘탐욕’에 봉사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조일훈 IT모바일부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