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릭 "中, 근본개혁 안하면 '중진국 함정' 에 빠질 것"
지난해 1월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서 열렸던 2011년 미국경제학회 연례총회에서 경제학자들은 “미국이 지배적 지위를 누리던 시대는 이미 끝났으며 앞으로 10년 안에 중국이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고 입을 모았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끝나지 않았고 거대하고 영향력 있는 은행들이 미국의 성장을 가로막을 것(사이먼 존슨 매사추세츠공대 교수)”이라는 진단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인 7일(현지시간) 시카고에서 열린 2012년 연례총회에서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미국이 침체를 겪고 있긴 하지만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며 부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 중국은 경착륙 우려가 부각됐다. 미국의 재정위기가 아닌 ‘중국 리스크’가 유럽 재정위기와 함께 회의의 최대 화두로 부상했다.

졸릭 "中, 근본개혁 안하면 '중진국 함정' 에 빠질 것"
이날 시카고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세계 경제에서 중국과 미국’ 토론회에서는 199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먼델 컬럼비아대 교수, 1992년 수상자인 게리 베커 시카고대 교수, 2010년 12월까지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 등 세계적인 석학들이 중국 경제에 대한 회의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졸릭 총재는 “중국은 근본적인 구조개혁 없이는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에 빠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금융위기 이후 중국이 주도해온 세계 경제 성장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식품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가장 큰 위협”이라고 말했다. 졸릭 총재는 이어 장기적인 위협으로 “생산성 향상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고 있고, 노동력이 쇠퇴하고 있으며, 경제가 채 성숙되기도 전에 인구 고령화가 시작되는 등 중국 경제를 이끌어 왔던 성장동력들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다만 “세계 은행은 중국 정부와 함께 이런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인 구조개혁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금융산업을 현대화하고 정부와 공기업의 영향력을 줄이는 일련의 개혁 과제에 중국 정부도 동의하고 있는 것은 좋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졸릭 "中, 근본개혁 안하면 '중진국 함정' 에 빠질 것"
서머스 교수는 중국이 10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주장을 반박하는 데 토론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볼 때 상당수의 포천 500대 기업이 어느 한 국가에서 이사회를 개최했다면 그 국가는 이미 둔화가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로 근무할 당시 어느 한 국가의 과거 10년간의 성장률과 향후 10년간의 성장률 사이에는 아무 상관관계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며 “공무원들의 부패, 환경문제, 권력이동 리스크 등은 중국 경제성장 둔화를 예상하게 하는 이유들”이라고 강조했다.

먼델 교수는 “덩샤오핑 이후 중국이 추진해온 산업 현대화는 기술과 자본, 시장을 모두 해외에서 빌려와 실행했던 것”이라며 “앞으로 중국은 스스로 혁신하지 못해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과 똑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커 교수도 “1960년대에는 소련, 1980년대에는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될 것이라고 모두들 예상했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며 “중국이 노동인력의 이동성 부족, 미발달된 소비시장, 위축된 노동 및 자본시장 같은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졸릭 "中, 근본개혁 안하면 '중진국 함정' 에 빠질 것"
석학들은 다만 “앞으로 중국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좋든 나쁘든 막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중국이 시장경제로의 전환에 성공하도록 선진국들이 대화를 지속하며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카고=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