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다우 1000P 끌어올릴 호재 '기준금리 사전예고제'
매년 첫 회의가 끝난 뒤에야 입을 여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전통적 관행을 깨고 벤 버냉키 의장이 올해는 새해 벽두부터 획기적인 내용을 언급했다. 월가에서는 시간을 두고 다우존스지수를 최소한 1000포인트 이상 끌어올릴 초대형 호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언급된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경제전망 시기를 종전의 ‘반기’ 기준에서 ‘분기’로 늘린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예측 여건에서 각종 라이프 사이클이 짧아지는 추세를 반영하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금융위기 이후 고질적으로 문제가 돼 왔던 Fed의 예측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의도다.

다른 하나는 ‘기준금리 사전예고제’다. 매 분기 경제전망이 발표될 때마다 3분기 후의 기준금리 수준과 필요할 경우 2~3년간의 기준금리 결정 방향까지 내놓겠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버냉키의 만용’이라 불릴 만큼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이 조치를 자세히 뜯어보면 중앙은행 등 경제주체들에 시사하는 많은 내용이 함축돼 있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다우 1000P 끌어올릴 호재 '기준금리 사전예고제'
무엇보다 시장과의 소통을 강조하겠다는 숨은 의도가 작용돼 있다. ‘맨큐 경제학’의 저자로 잘 알려진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를 중심으로 Fed가 통화정책 효과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시장과의 지속적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이번 조치는 이런 요구를 전격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기준금리 결정에 따른 정책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의도도 강하게 나타난다. 최근처럼 초(超)저금리로 부채가 많은 시대에는 기준금리만큼 국민 경제 전반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없다. 짧게는 3분기 후, 길게는 2~3년 뒤의 기준금리를 알 수 있다면 경제주체들은 보다 안정적으로 경제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앞으로 ‘기준금리 사전예고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미 경제 회복세가 더 견실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Fed의 정책 여지는 크게 제한돼 있다. 기준금리는 더 이상 내릴 수 없고, 유동성 조절정책도 잠복한 인플레이션 우려로 3차 양적완화 추진이 쉽지 않다. 궁여지책 속에 지난해 9월에 내놓았던 ‘오퍼레이션 트위스트 정책’도 장·단기 금리체계를 흐트러뜨리는 부작용이 노출돼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 사전예고제’가 실시되면 금융과 실물 간 연계성이 보다 강화돼 금융권에서만 맴도는 돈이 실물로 흘러들어갈 수 있다. Fed가 가장 고민해 왔던 아킬레스건이 풀리는 셈이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심리적 요인과 네트워킹 위력이 큰 시대에 이 효과는 의외로 크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런 만큼 미국 학계에서 보이는 관심도 높다. 버냉키 의장 취임 이후 미국의 통화정책 시차가 얼마나 짧아졌는가에 대한 논쟁이 지속돼 왔다. 3분기 뒤의 기준금리 수준을 예고한다는 것은 케인시안 통화정책 전달 경로(transmission mechanism·통화량 조절→금리변경→총수요 영향→성장률 결정)상의 시차가 9개월 정도임을 Fed가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쪽으로 학계나 시장에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판도 만만치 않다. 물가안정에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할 Fed가 사전에 예고한 말을 지키는데 열중하다 보면 오히려 물가가 불안해지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갈수록 통화당국이 통제할 수 없는 행태변수(behavior variables)가 많아지는 인플레이션 관리 여건에서는 충분히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물가는 하향 안정되는 추세가 뚜렷하다. 글로벌·사이버화 진전에 따른 최종상품의 가격파괴 현상으로 ‘월마트 효과’가 크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통화론자의 이상이 실현됐다고 하는 유럽중앙은행(ECB)을 비롯한 각국의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을 고집하는 ‘천사와의 키스’보다 경제성장에 무게를 두는 ‘악마와의 키스’를 선택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오히려 ‘기준금리 사전예고제’는 과열일 때 정점을 더 끌어올리고, 침체일 때 저점을 끌어내리는 경기순응성(procyclicality)을 줄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이른바 소득세가 갖는 자동조절장치(stabilizer)다. 경기와 물가의 진폭이 줄어들면 주가를 비롯한 각종 가격변수의 변동성이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커지는 ‘팻테일 리스크(fat tail risk)’ 장세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버냉키 의장은 취임 초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앨런 그린스펀 전임 의장과 대립각을 세워 화제가 돼 온 인물이다. 그중에서 통화정책 관할 대상을 놓고 실물경제만 고려해야 한다는 ‘그린스펀 독트린’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까지 감안해 추진해야 한다는 ‘버냉키 독트린’ 간 논쟁은 유명하다.

이후에 판명되겠지만 갈수록 ‘버냉키 독트린’ 시각에서 통화정책을 추진하는 중앙은행이 늘고 있다. 벌써부터 ‘기준금리 사전예고제’를 ‘제2의 버냉키 독트린’으로 보는 시각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앞으로 투자자를 비롯한 경제주체들이 미국 경기 상황을 좀 더 비중을 둬 세밀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는 때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