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과 독일 정부에서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민간 채권단이 더 많은 빚을 탕감해줘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에 따라 원금의 50%였던 민간 채권자의 헤어컷(탕감) 비율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클레멘스 푸에스트 독일 재무부 기술자문위원장은 8일 그리스 일간 토비마와의 인터뷰에서 “민간 채권단의 헤어컷 비율이 50%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는 현재 160%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규모를 2020년까지 120%로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선 민간 채권단이 더 많은 부채를 탕감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푸에스트 위원장은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에게 정책 자문을 해주는 핵심 브레인 중 한 사람이다. 독일인이며 현재 영국 옥스퍼드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지난 7일 IMF 내부 자료를 인용, 그리스 정부가 예정대로 국가부채를 감축하지 못한다면 민간 채권단이 더 큰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올리비에 블랑샤르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6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민간 채권단의 손실률이 50%를 초과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IMF는 또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국가들이 그리스 구제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독려할 예정이라고 슈피겔은 덧붙였다.

유럽연합(EU) 정상과 주요 은행들은 지난해 10월 그리스 민간 채권단의 헤어컷 비율을 50%로 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그리스의 경제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부채 감축에도 어려움을 겪자 독일 정부와 IMF가 민간 채권단에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의 지난해 GDP 증가율은 -5.5%로 유로존에서 최하위 수준이었다. 올해 GDP 증가율도 -2.8%로 마이너스 성장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그리스중앙은행은 추정하고 있다.

2일 그리스 인터넷매체인 유로2데이는 독일 정부가 민간 채권단과 탕감 비율을 75%로 늘리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그리스의 국가부채 규모는 3500억유로이고 이 중 2000억유로를 민간 채권단이 보유하고 있다. 그리스는 EU와 IMF로부터 총 24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합의했으나 아직 730억유로밖에 받지 못했다. EU와 IMF는 그리스가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해 구제금융 지급을 늦췄다. EU와 IMF 실사단은 오는 15일 아테네를 방문해 그리스 정부에 대한 실사를 재개한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