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동결 합의 못하면 공권력 발동"…'네덜란드 병' 떨쳐낸 승부수
1982년 11월17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노·사·정 대화기구 ‘노동재단’ 청사 회의실. 재계 대표 크리스 반 빈 네덜란드기업연맹 위원장과 노동자 대표 빔 콕 네덜란드 노총위원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표정은 밝지 않았다. 임금 협상 타결에 실패한 직후여서 피차 심기가 불편했던 것. 잠시 뒤 한 남자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최후통첩’을 선언했다. “내년 1월1일까지 협상을 끝내세요.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데 합의하지 못하면 정부가 직접 나서 어떤 조치라도 취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강경한 공권력 동원’도 다짐했다. 2주 전 총리에 오른 43살의 루드 루베르스였다.

높은 실업률, 과도한 사회복지에 시달리던 ‘네덜란드병’을 치유하고 ‘네덜란드의 기적’을 이루는 개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루베르스는 이후 14년간 총리를 지내며 ‘노·사·정 타협을 통한 경제성장’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냈다. ‘폴더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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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행진의 첫걸음’ 바세나르협약

루베르스의 경고를 받은 노사 대표는 협상장으로 내몰렸다. 루베르스는 이들을 압박하기 위해 정부 예산을 동결해버렸다. 선수를 친 것이다. 국민들도 노사 협상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1주일간의 난상토론 끝에 11월24일 간단한 합의를 이뤄냈다.

노조는 임금동결을 받아들이고 사회보장세도 더 부담하기로 했다. 대신 사용자 측은 노동시간을 두 시간 단축하고 일자리 나누기(잡 셰어링)에 나서기로 했다.

노사 모두 ‘강력한 공권력 개입’ 없이 협상을 타결지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합의문 분량은 한 장 반에 불과했다. 합의는 협상이 열린 장소의 이름을 따 ‘바세나르 협약’으로 불렸다. 이 첫걸음과 함께 네덜란드의 기적은 시작됐다. 정치 지도자의 아젠다가 항상 거창한 구호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의 ‘노·사·정 합의 모델’은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시작해 점차 영향력을 확대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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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베르스는 이듬해 재정개혁으로 노사합의에 화답했다. 공무원의 임금을 삭감하고, 더 많이 버는 기업의 세금을 깎아주는 획기적 세제개편안을 내놨다. 일하는 사람의 복지혜택을 늘리고 실업수당을 줄이는 사회보장 시스템 개선에도 착수했다. 그의 선거공약이기도 했다. “관대한 복지라는 파티를 끝내고 모든 이들이 일을 해서 생계를 꾸려가게 하겠다”고 약속한 그의 슬로건은 ‘난센스는 없다’였다.

네덜란드 산별노조는 바세나르 협약에 따라 대부분 단체협약을 개정했다. ‘사회보장개혁-임금인상 억제-노동시장개혁’을 통해 경제를 다시 일으킨 폴더 모델이 완성된 것이다. ‘폴더’는 간척지란 뜻으로 네덜란드를 상징한다.

"임금동결 합의 못하면 공권력 발동"…'네덜란드 병' 떨쳐낸 승부수

◆달갑지 않은 임무

루베르스가 총리에 취임하기 전 네덜란드는 ‘유럽의 미운 오리새끼’로 불렸다. 7% 가까운 물가상승률,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 10%에 이르는 실업률 등이 문제였다. 기업들의 잇단 도산으로 매달 실업자는 1만명씩 늘었다. 그 바람에 실업수당 지급이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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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베르스는 우선 기업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조가 변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그 방법으로 네덜란드의 전통인 ‘협약의 정치’를 부활시키기로 결심했다. 이를 위해 악역을 맡기로 결심했다. 전임 정부가 사회협약의 전통을 지켜내지 못하고 인기에 연연해 개혁의 시늉만 해왔기 때문이다. 루베르스 총리는 국민의 지지를 배경으로 노조에 대한 압박도 서슴지 않았다.

승부사의 기질도 보여줬다. 1984년 네덜란드 실업률이 14.7%까지 치솟자 그는 “실업자가 더 늘어나면 총리직을 사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이 같은 결단은 오히려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루베르스가 소속한 기독교민주당은 그 이후 벌어진 선거에서 ‘루드(루베르스의 애칭)가 일을 더하게 하자’는 슬로건을 내걸 정도였다.

위기상황에서는 더 강력하게 자신의 아젠다를 실천했다. 1989년 노조가 4% 임금인상을 요구했을 때 그의 진면목이 발휘됐다. 그동안의 임금인상 억제노력이 물거품 될 위기에 처하자 루베르스는 법을 바꿔버렸다. 노동부 장관이 직권으로 임금을 동결하거나 임금인상 상한선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신념에 입각한 일관된 정책 추진’으로 사회협약 모델을 지켜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예의없이 주장을 밀어붙인다’고 해서 ‘상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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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하는 사회’의 복원

루베르스 총리의 사회협약 아젠다는 후임 총리 빔 콕이 그대로 계승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유럽국가들의 벤치마킹 모델이 되기도 했다. 사회협약이 이처럼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있어 가능했다.

정부가 강력하게 노사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영국의 마거릿 대처와 같았다. 그러나 노조를 무력화한 대처와 달리 루베르스는 노조를 사회협약의 주체로 인정했다. 그리고 대화의 테이블로 불러들여 대화에 참여시켰다. 네덜란드의 기독교적 전통인 ‘합의의 문화’를 계승한 것이란 평가다. 프리츠 샤프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는 “바세나르협약을 계기로 노조와 사용자들은 이전의 경쟁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협력관계를 복원했다”며 “국민들의 공감 속에 경제 활성화와 고용 촉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다시 갖게 됐다는 게 중요한 성공요인”이라고 평가했다.

홍석빈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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