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아젠다가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대표적 실패 사례가 의료개혁이다.

의료개혁은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클린턴의 대표 공약 중 하나였다. 선진국 가운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의료보험 제도가 없는 유일한 나라가 미국이다. 당시 미국에선 연소득 1만5000달러 미만 빈곤계층의 3분의 1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연소득 1만5000~3만달러 계층도 비슷한 처지였다. 클린턴 정부는 전 국민 의료보험을 추진했다. 하지만 의료개혁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고 이는 1994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공화당에 참패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클린턴이 의료개혁에 실패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입법 작업을 너무 늦게 시작했다. 클린턴 정부가 의료개혁안을 의회에 제출한 시점은 1993년 9월22일이었다. 당초 계획(5월 말)보다 한참 늦어졌다. 집권 초반의 높은 지지도가 꺾인 데다 새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도 약해지면서 의료개혁을 추진할 동력을 상실했다.

둘째,설득과 타협이 부족했다. 전 국민 의료보험 혜택이 열악한 연방재정으로 가능한지에 대한 광범위한 의문이 제기됐다. 야당인 공화당은 의료의 질을 저하시킬 것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민주당과 공화당 온건파 의원들은 의료보험에서 배제된 국민의 85%만 보험혜택을 넓히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의료개혁안을 실질적으로 총괄하고 있던 부인 힐러리는 타협을 거부했고 클린턴도 힐러리의 손을 들어줬다.

셋째,곁가지 이슈로 우왕좌왕했다. 클린턴은 의료보험 개혁과 함께 동성애자의 군 복무금지를 금지한 차별법 철폐를 추진했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는 민주당 성향 유권자를 결속시키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대다수 국민의 관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중도성향 유권자가 클린턴에게 등을 돌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대통령이 아젠다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발빠른 이슈화와 집중적인 역량 투입, 정치적 유연성 발휘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