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숨통 조이겠다는 통합야당…'재벌개혁·분배'가 핵심 강령
오는 18일 새로 출범하는 통합야당이 정책의 핵심 기조로 재벌개혁과 분배중심의 경제정책을 확정해 논란이 예상된다. 내년 4월 총선 이후 정책강령을 앞세워 대기업 옥죄기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민주당과 시민통합당, 한국노총 등은 15일 회동을 갖고 이 같은 내용의 강령(간사 박병석)을 잠정 확정했다. 야권통합결의에 앞서 16일께 사실상 경제민주화를 내세운 통합신당의 강령과 정책을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

정강 정책에는 ‘재벌개혁과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기업의 사회적 책임강화’ ‘조세정의실현’ ‘대ㆍ중소기업 상생경제’ 등이 명시됐다. 하나하나가 대기업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한 내용들이다. 최근 대기업집단의 일감몰아주기와 편법 증여 등에 대한 비판적 국민여론을 정강에 담았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으로 이원화돼 있는 금융감독기관의 재정비까지 포함시켰다.

1987년 노동자 투쟁과 2008년 이후 촛불사태 등을 ‘계승해야 할 역사’ 라고 추가했다.
기업 숨통 조이겠다는 통합야당…'재벌개혁·분배'가 핵심 강령
이 같은 ‘좌클릭’은 통합야당에 참여하는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의 의지가 대폭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박순성 민주정책연구원장은 “민주당이 통합을 위해 좀더 진보 쪽으로 나가야 한다는 의지를 정강 정책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경제성장 기조도 ‘성장이 목적인 경제를 사람을 위한 경제성장’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사람 노동 고용 교육 중심의 혁신적 균형성장으로 변경했다. 성장 중심에서 분배중심으로 경제성장의 방향을 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노동정책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차별 철폐를 전면에 내세웠다. 통합야당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층 좌클릭 경제정책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이다. 자연 민주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는 19대 국회에서 ‘재벌 때리기’ 성격의 각종 입법과 규제가 대폭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 같은 통합야당의 정강을 두고 ‘시류편승적’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야권의 뿌리인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책기조와 상충하는 면이 적지 않아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DJ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내세웠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다”며 “그런데 야당 내에서 뿌리에 대한 고민 없이 단순히 시류에 편승해 국민이 듣기 좋은 정강 정책만 짜깁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당의 정강이 달라도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현 정치권의 속성을 감안할 때 강령이 큰 의미를 갖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강 초안에 ‘법치’ ‘시장경제’ ‘경쟁력’ 등을 보수적 표현이라는 이유로 사용을 지양하도록 한 것도 논란을 낳았다.

보편적 가치인 법치가 어떻게 보수적 단어일 수 있느냐는 지적이 당내에서도 제기됐다. 박 원장은 “법치나 시장경제는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강조해온 것이지만 MB정부 들어 시장만 강조되고 법치는 언론과 시민의 자유를 탄압하는 용어로 악용되는 등 보수적 의미가 강화됐다는 점에서 그런 주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논란이 일자 박병석 정강정책 간사는 “법치 경쟁력 등은 보편적 의미이기 때문에 모두 반영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재계는 정치권의 기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날로 어려워지고 있는 글로벌 경영환경 속에 내년에는 정치권의 기업 때리기 강도가 훨씬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내년 선거를 앞두고 통합야당뿐 아니라 한나라당의 기조 변화도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다”면서 “과연 우리가 남미나 남유럽처럼 흘러가야 되는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김형호/허란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