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무역 1조달러 달성’을 자축하는 무역의 날 기념식을 가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수출에 기여한 유공자와 기업을 표창하고 “무역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도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12년 경제정책 방향 보고회 분위기는 딴판이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 대통령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 내년 경제성장률을 3.7%로 보고했다.

정부가 3%대 성장률을 내놓은 것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를 제외하고는 전례가 없다. 3.7%라는 숫자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3.8%보다도 낮다.

올해 19.2%의 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보이는 수출 역시 내년에는 한 자릿수 증가(7.4%)로 급전직하할 것으로 우려됐다. 내년에도 160억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낼 전망이지만 수출과 수입 증가폭이 올해보다 크게 둔화하는 ‘불황형 흑자’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무역 1조달러 잔치 속에서 ‘내년 경기 악화’를 예고하는 경고음이 동시에 울리고 있다. 경기 사이클이 침체기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유럽 재정위기마저 수그러들지 않는 등 국내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이 그 어느 때보다 많다는 것이다.

일선에서 뛰는 기업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섬유 등 10개 수출 주력 업종 단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디스플레이(LCD패널 등)를 제외한 9개 업종이 올해(1~10월 누적 기준)보다 수출이 급감할 것이라고 답했다.

업종별로는 조선산업이 올해 19.3%의 수출 증가율을 기록했으나 내년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점쳐졌다. 반도체도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마이너스 수출 증가율을 기록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석유산업은 올해 68%대 수출 증가율이 내년 5% 미만으로 뚝 떨어지고, 자동차산업 수출도 올해 28%에서 내년 5% 이하로 증가율이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재완 "내년 3.7% 성장…취업자 12만명 줄듯"

임상혁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올해 중동 민주화 시위와 그리스 국가부도 위기 속에서 기업들의 수출이 호조를 보였으나 내년에는 유럽발 경제위기, 미국 경기 침체 등 여파로 수출이 크게 악화할 것이라는 게 기업들의 진단”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도 “내년 성장률 3.7%는 베이스라인(기본적인 전망)으로 유로존 불안이 하반기까지 지속된다면 이마저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우려했다.

경제 성장이 둔화하면 일자리를 구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정부는 내년 취업자 증가폭이 올해보다 12만명 줄어든 28만명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에서는 이런 전망조차 지나치게 안일한 상황 판단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는 내년에 정치적인 혼란마저 겹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신규 진입을 제한하는 규제 완화와 서비스산업 선진화 등 새로운 성장산업을 발굴하는 정책들은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얽혀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경기 둔화에 대비해 경기부양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재정을 함부로 쓸 경우 신용등급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이마저 여의치 않을 것”이라며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심기/이태명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