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호통경영'의 달인…인수한 모든 기업을 흑자로 돌려놓다
“적자를 낸다는 것은 큰 죄입니다. 수치스럽게 생각하세요.”

2003년 일본 나가노시에 있는 한 회사의 강당. 호통 소리는 문 밖으로 새어나올 정도로 컸다. 소리를 지른 사람은 나가모리 시게노부(永守重信) 일본전산 최고경영자(CEO)였다. 꾸지람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일본전산에 팔린 산쿄정기(三協精機)의 직원들. 그들은 고개를 숙인 채 나가모리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자존심은 크게 상했다.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열심히 일해달라”는 형식적인 말은 한마디도 없었고, 치욕적인 질책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산쿄정기는 기술력으로 유명한 기계제조업체였다. 그러나 막대한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덩치가 더 작은 일본전산에 팔렸다.그리고 1년 뒤, 산쿄정기는 흑자로 돌아섰다. 꾸지람을 했던 나가모리에게 불만을 품는 직원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이 모든 게 나가모리 사장 덕분”이라며 극찬했다. 적자에 시달리던 회사를 구조조정도 하지 않고 1년 만에 되살려냈기 때문이다.

○‘기업 부활의 신(神)’

나가모리는 ‘기업 부활의 신’으로 불린다. 1984년 미국 기계업체 토린을 인수한 뒤 지금까지 29개 회사를 사들였다. 그의 손에 들어간 모든 회사는 1년 안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나가모리는 1973년 교토 시골 창고에서 모터제조업체 일본전산을 설립했다. 당시 직원은 나가모리를 포함, 4명이 전부였다. 그 뒤 38년 만에 계열사 140개를 거느린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직원은 13만여명이다. 지난해 매출은 6800억엔에 달했다. 내년엔 자동차 탑재용 모터 부문에서 세계 최고가 된다는 목표도 세웠다. 인수ㆍ합병(M&A)은 일본전산 성장의 발판이 됐다.

나가모리의 M&A 비법은 오직 ‘기술력’만 보고 사들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상화시킬 수 없다고 얘기해도 기술력만 탁월하면 회사를 매수했다. 그것도 회사 돈이 아니라 나가모리 자신의 돈으로 산다.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적대적 M&A는 절대 하지 않는다. 인수 대상 회사의 직원들이 M&A에 모두 동의할 때까지는 사인을 하지 않는다. 나가모리는 “적대적으로 인수한 회사 직원들에게 열심히 일하라고 해도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구조조정도 하지 않는다. 회사가 망하는 것은 전적으로 리더의 책임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나가모리는 “나약한 병사들만 있더라도 리더가 제대로된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M&A 후 직원들에게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은 ‘화장실 청소’다. 나가모리는 청소를 모든 일의 기본이라고 여긴다. 자기 손으로 변기를 닦아봐야 그 뒤에도 화장실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게 몸에 익으면 사무실에서도 정리정돈을 잘 하게 되고, 장비를 소중히 하는 태도도 갖게 된다는 얘기다.

‘식사 커뮤니케이션’도 실시한다. M&A 후 1년 동안은 젊은 사원들과 50회 이상의 점심간담회를 갖는다. 과장급 이상 관리직과는 25회 이상의 저녁 모임을 한다. 그는 식사 내내 농담을 한다. 불만도 편하게 말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다. 여기에서 나온 얘기들은 최대한 빨리 해결해 준다.

○‘인재는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키워내는 것’

나가모리가 직원을 중시하기 시작한 것은 1975년 공채에 실패한 이후다. 그는 창립 2년 만에 처음으로 신입직원들을 뽑기로 했다. 기쁨에 들떠 교토에서 가장 유명한 최고급 식당에서 초밥 20인분을 주문했다. 입사 지원을 위해 적어도 20명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초밥은 모두 직원들이 먹고 말 았다. 취업설명회에 한 명도 안 왔기 때문이다.

이듬해 다시 설명회를 열었다. 5명이 회사를 찾아왔다. 하지만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일본전산을 찾아온 이들이었다. 나가모리 사장은 고민에 빠졌다. 그는 장인의 한마디에 파격적인 공채 시험을 실시하기로 결심했다. 장인의 충고는 “머리는 안 좋아도 밥 빨리 먹고, 씻는 게 빠르고, 용변을 빨리 보는 사람이 일을 야무지게 한다”는 것이었다.

나가모리는 장인의 말대로 지원자들의 밥 먹는 시간을 쟀다. 화장실 청소도 이때부터 공채 시험 과목(?)에 넣었다. 꼼꼼하게 청소를 하는지 살펴봤다. 끈기 있는 사람을 골라내기 위해 오래달리기 시험도 봤다. 큰 목소리로 말하기를 통해 자신감이 있는지도 눈여겨봤다. 이 같은 시험을 실시한 건 능력은 부족할지 몰라도, 의지와 체력만은 확실히 강한 사람을 뽑겠다는 의도였다.

일본전산에는 독특한 ‘전원 영업, 전원 개발’의 원칙도 있다. 모든 직원이 낮에는 영업사원, 밤에는 엔지니어다. 회사의 모든 업무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호통 경영’으로도 유명하다. 나가모리는 직원들에게 “못 해내면 죽을 각오를 하라”는 ‘협박’과 질타를 일삼는다. 그래도 일본 기업들 중에서도 이직률은 최저 수준이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혼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성과를 낼 때는 확실하게 보상해 준다. 꾸지람을 들은 뒤 더 분발해 좋은 성과를 내면 인사에 반영한다. 이 때문에 일본전산에서는 후배가 상사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인재는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키워내는 것”이라며 “학벌이 좋은
'소통·호통경영'의 달인…인수한 모든 기업을 흑자로 돌려놓다
사람보다 심장이 뛰는 사람을 골라 교육시키면 된다”고 말한다. 나가모리 본인이 산증인이다. 그도 기술전문대학을 나온 게 전부다. 초등학교 시절 과학시간에 모터를 만들어 선생님에게 칭찬받은 이후로 모터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기술전문대학에서 엄격한 스승을 만나 지도를 받고 CEO로 성장했다.

○‘즉시, 반드시, 될 때까지’

창업 초기 직원도 구하기 어려웠던 일본전산. 대기업과 계약을 맺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가모리는 ‘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는 지침으로 새 길을 열었다.

그는 ‘스피드 경영’을 강조한다. “속도가 사업의 50%를 차지한다”며 “납기일은 무조건 다른 회사의 절반으로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다른 기업들이 가격 인하를 내세운 것과는 대조적이다. 가격 경쟁을 벌이는 것은 결국 제살 깎아먹기이기 때문이다. 나가모리는 납기일 단축을 위해 근무 시간을 하루 16시간으로 정했다. 다른 업체보다 두 배로 일하면 가능하다는 계산이었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납기일뿐만이 아니었다. 1975년 일본무선주식회사로부터 “빠른 업무 처리를 위해 도쿄에 사무소를 설치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1주일 만에 사무소를 개설하기도 했다.

그는 ‘반드시 될 때까지 한다’는 원칙도 고수한다. 무슨 주문을 받든 무조건 “된다”고 대답한다. 대기업으로부터 첫 수주를 받은 것도 그 덕분이었다. 그는 한 대기업으로부터 3개월 안에 모터 크기를 반으로 줄여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일본전산에 주문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일본전산은 그들의 예상대로 끝내 절반으로 줄이진 못했다. 그러나 18%를 줄이는 데는 성공했다.

그 결과를 들은 대기업은 그 정도 줄인 것도 기적과 같다며 일본전산과 거래를 시작했다. 같은 방식으로 일본전산은 3M, IBM 등 세계적인 기업으로부터 수주를 받았다. 나가모리는 “직원들에게도 안된다는 말은 절대 하지 못하게 한다”며 “불가능하다는 말은 핑계일 뿐이란 생각이 오늘의 일본전산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