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는 많을 수록 좋다? … '계륵 특허'  미련없이 파는 게 이득!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특허의 힘은 기업의 기술력에 비례할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기술력도 좋고 특허력도 좋다면 시장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술력이 좋음에도 특허력이 형편없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경쟁관계의 회사들보다도 먼저 많은 투자비용을 들여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음에도 특허권을 획득하는 데 실패하거나, 특허권을 확보하더라도 특허권의 보호 범위가 매우 좁은 형태로 권리를 받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기업의 특허력은 매우 약해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데 쓸모가 없다. 심지어 권리범위를 잘못 잡아서 경쟁자가 연구개발비를 거의 들이지 않고 무임승차로 최초 개발자의 아이디어를 자신의 무기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도랑은 누가 치고 가재는 엉뚱한 사람이 잡아가는 격이다.

#기술개발 성공…특허전략 실패로 통탄

A사는 한글 초성 검색 기능을 갖춘 기기를 가장 먼저 시장에 내놓았다. 한글 초성 검색 기능은 마니아 층을 중심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해당 제품의 판매가 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경쟁사도 한글 초성 검색 기능을 갖춘 기기를 출시했다. 한글 초성 검색 기능에 관한 특허권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A사는 경쟁사에 대해서 아무 조치도 취할 수가 없었다.

한글 초성 검색이라는 독특한 기능에 대해서 A사는 독점권을 가질 수 없었고, A사의 즐거움은 거기서 멈춰야 했다. 뿐만 아니라 한글 초성 검색 기능은 한글 검색이 필요한 거의 모든 정보기술(IT) 기기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갔고, A사는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A사는 한글 초성 검색 특허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하루라도 먼저 시장에 제품을 내놓으려고 서두르다 보니 특허에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한 탓이었다. 만약 A사가 한글 초성 검색에 관한 특허권을 확보했다면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게 유지했을 것이다.

#개발자도 경영의 눈을 가져야 특허경영 가능

제품 경쟁에만 급급해 특허권을 확보하는 데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는 관행이 지금은 개선됐을까. 그렇지 못하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특허경영이 도입되고 있지만 제품 개발을 담당하는 엔지니어 입장에서는 여전히 정해진 기간 내에 제품 개발을 완료해야 하는 압박이 강해 핵심 기능에 대한 특허 확보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엔지니어는 본인이 담당하고 있는 기술을 정해진 기간 내에 개발하지 못하면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본인이 개발한 제품의 핵심 기능에 대해 특허권을 확보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왜 그럴까. 아직까지 개발자의 인식은 특허권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된다고 여기는 수준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특허가 기업 생존을 좌우하는 특허 경제전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연구자, 개발자, 특허종사자 등 이공계 인재들도 경영을 보는 시각과 인식을 바꿔야 한다. 특허경영은 이공계와 인문계의 융합작품이자 융합예술이다.

#‘빨리 빨리’와 ‘싸게’가 죽쒀 남 주는 꼴 될 수도

우리는 ‘빨리 빨리’ 문화에 익숙하다. 덕분에 이렇게 빨리 성장했다는 해석도 있다. 특허도 먼저 출원한 자에게 권리를 주는 빨리 빨리 문화에 가깝다. 그러나 빨리 빨리가 큰 문제와 예측 불가능한 손해를 야기하기도 한다. 새로운 기능에 대해서 특허권은 먼저 확보했지만, 보호 범위가 매우 좁은 경우가 있다. 진정한 특허경영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도입되지 않은 경우 기업들은 특허권 확보 자체에만 신경을 쓸 뿐, 확보한 특허권의 보호 범위나 경제적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부분 ‘빨리 빨리’ 그리고 ‘싸게’ 특허권을 가지려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된 특허전략 없이 마구잡이식의 싸구려 특허는 빨리 특허를 확보해 봐야 별 가치가 없다. 때로는 후발자에 고속도로만 닦아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공개된 선행 개발자의 특허 정보를 이용,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더 좋은 특허를 거의 공짜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쥐에게 치즈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부지런한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조심성 없이 부지런하기만 한 쥐는 치즈를 얻을 수 없다. 조심성이 없어서 덫에 걸리게 되면 쥐덫에 있던 맛있는 치즈는 두 번째 쥐에게 양보해야 한다. ‘두 번째 쥐가 치즈를 얻는다(Second mouse gets the cheese)’고 하지 않는가.

특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먼저 출원한 사람이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쥐가 치즈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중소기업이었던 B사는 광역 무선호출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이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다. 대부분 중소기업은 제품이 출시돼 돈을 벌기 전까지는 자금, 인력 등 모든 면에서 자원이 부족하다.

B사도 제품 개발에 급급한 나머지 특허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특허권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했지만, 특허권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전략이 없었다. 회사에 필요한 장비를 구매하듯이 ‘싸고’ ‘빨리 빨리’에만 관심이 있었다. 첫 번째 쥐가 치즈를 먹으려면 쥐덫을 제거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무작정 서두르기보다는 전략을 세우고 그에 따라 특허를 출원해야 한다.

#가치 없는 특허는 한낱 부채일 뿐

아무 전략 없이 무작정 특허 출원을 서두르면 강력한 특허를 만들 수 없다. 급하게 만든 특허는 그 내용이 빈약할 수밖에 없다. 특허권의 기초가 되는 특허명세서는 법적 요건에 맞게 기재돼야 한다. 특허권은 발명 내용을 공개한 것에 대한 대가로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분야 기술자가 쉽게 발명 내용을 이해하고 발명 제품을 만들 수 있게 공개하지 않으면 특허권은 주어지지 않는다. 설령 특허를 받았다고 해도 무효가 된다.

강력한 특허를 만들기 위해서는 향후 시장에서 어떤 형태로 제품이 출시될 것으로 보이는지, 어떻게 특허 청구범위를 작성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깊이 있게 검토해 특허를 출원해야 한다. B사는 이를 간과한 것이다.

#양적 특허관리에서 질적 특허경영으로 전환

특허는 치밀하게 만들고 관리해야 한다. 그래서 특허경영이 필요하다. 특허경영은 단순히 특허만의 경영이 아니다. 연구개발전략, 사업전략과 일체로 수행해야 하는 융합의 한 분야다. 그래서 특허경영은 특허권만의 관리가 아니라 연구·개발(R&D) 효율화, 발명기법, 발명의 평가, 발명 보호수단의 전략적 선택, 사업전략에 따른 특허분석 등 광범위한 활동을 요구한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분쟁으로 특허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특허가 실제로 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되려면 특허경영에 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 특허관리는 양적 관리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양적 관리에서 질적 관리로의 전환이 쉽지 않다.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질적 관리를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누가 측정해야 할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그러나 특허경영을 고도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민해야 할 사항이다. 이에 대한 답은 한 가지가 아니라 기업마다 다를 수 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어느 날 C사에 특허를 팔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담당자는 고민스러웠다. 회사에서 사용하지 않는 특허지만 얼마에 팔아야 할지 몰랐다. 형편없이 낮은 가격에 팔았다가 후회할까봐 두려움이 앞섰다. 결국 손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특허 구매 제의를 거절했다. 그렇다고 해당 특허에 대해서 권리행사를 하지 않고 보유만 하고 있다고 도움이 될까. 그렇지 않다. 사용하지 않는 특허권을 보유한다는 것만으로는 빛을 발하기 어렵다. 특허권은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특허권을 사용하고 있는 경쟁자를 찾아서 침해금지 및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적극적으로 라이선싱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운영해야 한다.

물론 사업분야의 특허권이라면 단순히 보유만 해도 경쟁적 이점을 얻을 수 있다. 경쟁사 입장에서 보면 회피설계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큼 비용이 상승한다. 그러나 자사도 타사도 모두 사용할 가능성이 없다면 특허권을 과감하게 포기할 필요가 있다. 특허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특허 연차료를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보유하고 있는 특허권은 반드시 평가해야 한다. 평가가 어렵다고 방치하면 안 된다. 평가가 잘못돼 좋은 특허를 포기할 가능성도 있지만, 막연한 가능성 때문에 평가 자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평가를 하지 않을 경우 불필요한 특허권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특허권을 보유하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이 포기한 특허 때문에 발생한 손해보다 훨씬 큰 경우가 많다. 평가상 실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더라도 평가 자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다만 평가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평가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데 보다 많은 투자가 있어야 할 것이다.

특허는 많을 수록 좋다? … '계륵 특허'  미련없이 파는 게 이득!



이경란 rana@ezpat.com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국가과학기술위원회지식재산전문위원
제35대 대한변리사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