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저녁 8시, 광주광역시 주월동의 한 주택가. 바깥엔 간판조차 없이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S식당에 들어서자 테이블마다 손님들로 북적였다. 이 식당의 인기 메뉴는 광주시 인근 야산에서 잡아온 야생 멧돼지. 이 식당의 주인 홍모씨는 “오늘 갓 잡아온 멧돼지인데 처음 온 손님치고는 운이 좋다”며 기자 일행을 반겼다.

홍씨는 이 식당을 예약제로 운영하면서 멧돼지를 잡는 날 단골 손님들에게 일일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 영업하고 있었다. 홍씨는 “유해동물 구제 활동 중에 잡은 멧돼지라서 판매하는 데 문제가 없다”며 “멧돼지 판매는 불법이 아니다”고 안심시켰다. 그는 “XX건설 회장, 광주시 고위 공무원 등이 단골”이라고 자랑까지 했다. 홍씨는 “멧돼지 외에도 노루와 꿩, 오리, 비둘기 등 단골고객이 미리 말만 해 주면 잡히는 대로 연락을 한다”며 명함을 건넸다.

식사 후 식당을 나서자 이 식당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10년째 살고 있다는 최모씨(45)가 나타났다. 최씨는 “그곳에서 멧돼지 고기를 판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라고 의아해했다.

기자와 동행한 한국야생동식물보호관리협회 관계자는 “허가받은 사냥꾼이 잡은 멧돼지는 팔 수 있지만 농가의 피해를 막기 위해 멧돼지 등 유해동물을 사냥해 이를 영리목적으로 파는 행위는 불법”이라며 “이는 명백한 밀렵 행위”라고 말했다.

◆야생 멧돼지 한 마리 250만원

멧돼지, 고라니 등 야생동물이 논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사람을 공격하는 등 피해가 늘어나자 환경부가 엽사(사냥꾼)들을 뽑아 1984년부터 허용한 ‘유해동물구제단’이 합법을 가장한 밀렵꾼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들은 잡은 동물을 해당 지자체에 신고하지 않는 것은 물론 포획동물을 버젓이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야생동물들을 식당이나 한약방 등에 고가에 팔고 있다. 멧돼지 한 마리는 250만원(150㎏ 기준), 고라니는 25만~30만원에 거래된다. 광주시내 식당에선 멧돼지 구이 1인분에 1만8000원, 쓸개 한 개에 100만원, 뼈는 50만원가량에 판매된다.

경기지역에서 활동하는 한 사냥 전문가는 “직업적으로 식당을 운영하면서 잡은 동물을 파는 사냥꾼이 상당수”라며 “한 번 사냥 나가면 두 마리 이상을 잡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비싼 부위인 멧돼지 쓸개는 주로 자영업자들이 대관(對官)업무상 필요한 회식자리 같은데 오르는데, 비싼 양주에 섞어 마시면 숙취가 없다는 입소문이 돌아 찾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

유해동물 구제활동은 지자체의 허가만 받으면 언제 어디서든 사냥할 수 있다. 권성현 한국야생동식물보호관리협회 광주·전남 지부장은 “사설 단체에 가입해 유해동물 구제활동을 하면 기간과 장소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사냥할 수 있어 합법적인 수렵은 오히려 기피하게 된다”며 “지자체의 수입을 늘리고 유해동물의 개체 수를 줄이려는 수렵제도의 의미가 퇴색된 지 오래”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부가 정해놓은 수렵 기간과 장소에서 합법적으로 잡힌 유해동물은 2008년 2만3000여건에서 2010년에는 8000여건으로 3분의 1 정도 줄었다.

한 사설 수렵단체의 간부는 “똘돼지(어린 멧돼지) 역시 농가에 상당한 피해를 입히지만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일부러 안 잡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사냥 허용 범위도 피해발생지역으로 국한하지 않고 마을 전체 또는 지자체 관내로 광범위하다. 권 지부장은 “합법적인 사냥지역을 허가하는 시·군은 민원이 접수되면 현장확인 없이 허가를 내주는 게 현실”이라며 “무분별하게 사냥 단체가 생기지 못하도록 철저한 기준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농가피해 막자고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꼴

당초 유해동물구제단 제도를 도입할 때만 해도 환경부는 법정단체인 한국야생동식물보호관리협회 회원 중에서 수렵 경력 5년 이상, 밀렵으로 처벌받지 않은 자 등 엄격한 자격 요건을 갖춘 사냥꾼으로 유해동물 구제 회원을 꾸렸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농가피해 민원이 급격히 늘어나자 해당 지자체는 회원자격을 사설 단체까지 넓혔다. 그런데도 감독기관인 환경부는 공평한 기회를 준다는 이유로 수수방관해왔다. 더구나 구제단 회원자격기준이 암묵적으로 완화되면서 수렵 경력이 짧거나 심지어 밀렵을 하다가 적발된 범법자에게도 문호를 개방하는 결과가 빚어졌다. 지난 9월, 정부는 지침까지 바꿔 이들도 유해동물 구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줬다.

결국 느슨해진 유해동물 구제단 회원가입조건은 합법 회원의 불법밀렵을 부추겼다. 이들은 정부가 허용한 공식 수렵허가 기간(매년 11월1일~2월28일)에 구애받지 않고 아무 때나 농가지원을 명분으로 밀렵을 할 수 있는 면죄부를 받은 셈이다.

한국야생동식물보호관리협회에 따르면 2008년부터 야생동물로 인한 농가피해는 줄지 않지만 같은 기간 유해동물 포획 신고 건수는 줄었다. 2008년 16만5950마리였던 유해동물 포획건수는 2009년 15만29마리로 줄었고 지난해에는 12만1928마리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금액은 130여억원으로 비슷했다. 구제단 회원의 불법거래로 포획 통계에 잡히지 않은 채 불법 거래되는 포획 야생동물의 수가 만만치 않다는 방증인 셈이다.

권 지부장은 “신고된 수치상으로는 개체 수가 줄었기 때문에 피해액도 줄어야 하지만 피해액은 이전과 같다”며 “멧돼지나 고라니 등을 포획한 후 신고하지 않고 개인이 챙기거나 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광주시청 관계자도 “광주 전남 지역만 해도 유해동물구제단 회원이 7개 단체에 700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며 “그런데도 포획 동물 수가 주는 걸 보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밀렵감시단증’ 남발…발각 시 “우리가 남이가”

유해동물 구제단을 꾸리고 있는 사설 단체들은 자체적으로 회원들에게 밀렵감시단증을 발급해 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한국야생물보호관리협회가 전체 밀렵감시단의 인원 수를 180명으로 제한하고 밀렵이나 총기 개조 등으로 처벌된 경력이 없어야 단증을 발급하는 것과는 달리 이들 사설 단체의 경우 아무런 제약없이 단증을 남발하고 있었다. 이들은 밀렵을 하다 적발되면 ‘증’을 내밀고 감시원이라며 빠져 나갈 수 있다.

사설 수렵단체인 J단체 회원 김모씨(38)는 “밀렵 행위를 하다 적발돼도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눈감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털어놨다.

한국야생동식물관리협회 전북지부 관계자는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단체들에 시·군에서 단체설립이나 유해조수 구제 허가를 남발하다보니 이것이 불법 밀렵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렇다보니 이들이 허가구역을 벗어나거나 잡지 말라는 동물을 포획하는 등 무법천지나 다를 바 없다”고 대책마련을 호소했다.

감독기관인 환경부는 이러한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구제단에 가입된 회원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구제단의 야생동물 판매는 불법이지만 허가를 내주는 해당구청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 유해(有害)동물 구제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에 피해를 주는 멧돼지 고라니 등 야생 동물을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 포획할 수 있는 제도. 1984년 환경부의 법정단체인 한국야생동식물보호관리협회 회원 중에서 수렵 경력 5년 이상, 밀렵으로 인해 처벌받지 않은 사람 등을 선발해 농가와 인명 피해를 줄이는 데 기여했다.이들이 잡은 포획동물은 해당 지자체가 관리하고,구제단회원이 파는 것은 불법이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