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反월가 시위의 자가당착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로 불리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가 이번엔 샌프란시스코 번화가인 유니온스퀘어를 ‘점령’했다. 메이시백화점의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행사가 열린 이날 저녁, 시위대는 백화점으로 향하는 교차로 한가운데 앉아 쇼핑객들을 향해 “쇼핑을 중단하고 시위대에 합류하라”고 소리쳤다.

매년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블랙 프라이데이는 연말연시 쇼핑시즌을 알리는 미국 유통업체들의 최대 대목이다. 주요 유통업체 1년 매출의 20%가 이날 발생할 정도다. 국내총생산(GDP)의 70%가 소비로 이뤄진 미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월가 점령 시위대는 이날을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Don’t buy anything day)’로 정했다. 그들은 ‘상위 1%’로 규정한 대기업들의 매출에 타격을 입히겠다는 의도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100㎞에 위치한 캘리포니아의 주도(州都) 새크라멘토에서도 20여명의 시위대원들이 한 작은 쇼핑몰로 행진했다. 백화점 여성복 코너로 진입한 시위대는 “메이시와 같은 기업형 유통업체들의 이익은 상위 1%에게만 돌아가며 99%인 종업원들은 월급도 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시위대는 한참 동안 매장을 점령한 채 “그들은 이익이라고 부르는 것을 우리는 도둑질이라 부른다”고 외쳤다.

“블랙 프라이데이를 점령하라”는 구호 아래 미국 전역에서 간헐적으로 발생한 이번 시위는 목적도 분명치 않고 경제 시스템도 이해하지 못하는 월가 점령 시위대의 한계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자신들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인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소비가 살아나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게다가 그들이 점령한 월마트와 메이시 앞에서 할인 제품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선 쇼핑객들은 시위대가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99%’다. 1%의 고소득자들은 굳이 새벽부터 잠을 설쳐가며 블랙 프라이데이 쇼핑에 나서지 않는다. 자신들에게도, 자신들이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중산층과 저소득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주장들을 언제까지 반복하며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할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유창재 뉴욕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