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대기업=수출, 중소기업=내수’라는 전통적 프레임에 갇혀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대·중기 상생, 동반성장, 공생발전 등의 이름을 단 정책들이 모두 그랬다. 하나같이 나라 안과 밖,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시장이 따로 있다는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지정제도 같은 것은 바로 그런 가정의 대표적 산물이다. FTA로 상징되는 개방과 경쟁의 시대에 이런 인위적이고 억지에 가까운 보호가 통할 리 없다. 설사 그런 식으로 국내 대기업을 몰아낸다 해도 곧바로 글로벌 기업들이 들이닥친다.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중소기업을 죽이고 마는 그야말로 어리석은 발상이다.

한·미 FTA는 한국의 경제영토를 확 넓혀 놓았다. 수출시장과 내수시장의 구분이나 경계가 없는 ‘하나의 시장’ ‘더 큰 시장’이 열린다. 이 시장의 가장 큰 수혜자는 누구보다 중소기업이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동차산업의 중소 부품업체들이다. 현대·기아차의 약진은 국내 부품업체들의 글로벌화를 급격하게 촉진시켰다.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의 눈길이 국내 부품업체들에 쏠리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부품업체 만도는 더 이상 중소·중견기업이 아니라 이미 글로벌 기업이다. 한·미 FTA를 통해 자동차산업이 또 한번 도약하면 제2, 제3의 만도가 속출할 것이다.

전자산업도 마찬가지다. 한·미 FTA로 글로벌 IT 대기업 간 경쟁 강도가 높아지면 중소 부품업체들은 더 많은 기회를 맞을 것이다. 다름 아닌 이런 게 진정한 대·중기 동반성장이다. 동반성장은 보호가 아닌 경쟁을 통해, 좁은 국내시장이 아닌 글로벌 시장에서 비로소 가능하다. 중소기업의 돌파구가 여기에 있다. 좁은 국내시장에서 보호에 연연할 게 아니라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야 한다. FTA는 그 발판이다.

벤처기업으로 시작해 매출 1조원이 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휴맥스 같은 기업들이 FTA 시대에는 더 많이 나올 수 있다. 연구개발도, 시장도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타기팅해야 한다. 중소기업 정책도 이런 방향에 맞게 확 뜯어고쳐야 한다. 우리 청년들이 미국의 실리콘밸리 네트워크에 바로 접근할 수 있도록 창업도, 금융도 글로벌 자원을 적극 활용하는 쪽으로 가야만 한다. 독일과 일본을 능가하는 중소기업 강국을 만들 수 있다. 또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