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채색된 시간의 흔적 보이나요?
미술관에 채색된 시간의 흔적 보이나요?
“미술관은 영원불멸의 예술작품을 통해 과거와 현대를 융화시킬 수 있는 공간입니다.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제안으로 보수 중인 노이에미술관 내부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던 게 무척 기뻤어요.”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는 독일 여성 사진작가 칸디다 회퍼(67·사진)는 “2009년부터 여러 계절에 걸쳐 빛의 변화를 지켜볼 수 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독일 사진예술의 거장 베른트 베허에게 수학한 그는 세계적인 사진작가 토마스 루프, 토마스 스투르스, 안드레아스 거스키, 악셀 휘테 등과 함께 ‘베허 학파’ 1세대 작가로 불린다. 2003년 마틴 키펜베르거와 함께 제50회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대표로 참가했고, 2006년에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 전시실을 촬영한 작품들을 루브르 박물관에서 전시하기도 했다.

내달 25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는 독일 베를린의 ‘노이에미술관’ 시리즈 12점과 작년에 제작한 ‘수도원’ 시리즈 3점을 걸었다. 사람을 배제하고 오직 공간에 남은 시간의 흔적에 집중한 작품들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노이에미술관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슈틸러의 설계로 1841년부터 1859년까지 18년간에 걸쳐 완공된 기념비적 건축물이다. 2차세계대전 때 심하게 파괴돼 60여년간 폐허로 방치됐다가 1997년 치퍼필드가 복원해 2009년 재개관했다.

회퍼는 이곳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것은 “동·서독 체제가 남긴 분단의 상처를 묵묵히 보듬고 있는 미술관의 모습에서 공간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읽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미술관을 비롯해 서점, 사무실, 도서관 등 다양한 건축물의 내부 공간을 카메라 렌즈에 담아왔다. 건물의 미학적 측면보다는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내면을 포착한 것이다.

“저는 그 공간의 주체인 인간이 제외돼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처음 봤을 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인위적인 조명을 배제하고 전시장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만으로 촬영을 진행하죠.”

‘인간의 부재’와 ‘공간의 연출’을 재해석하는 그는 작품의 시각적 명료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캡션에도 공간이나 건물, 위치, 촬영 날짜만 간결하게 명시한다.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평소 사진 찍히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는 그는 “노이에미술관 내부의 여덟 곳을 촬영해 시간의 흔적이 남긴 건물 고유의 모습과 화려한 장식이 뿜어내는 역사성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미술관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천히 변하거나 소멸되는 사회적 움직임들을 대표하는 장소입니다. 작품이 전시된 방식에 따라 공간도 변하죠. 저는 공간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곳에 놓인 사물들로 인해 어떻게 변화됐는지, 이것들이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미술관 북서쪽의 8각형 돔으로 이뤄진 홀을 담은 것이다. 그곳에는 기원전 1340년 고대 이집트의 네페르티티 여왕 두상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홀 중앙에서 빛나는 네페르티티의 두상을 보노라면 마치 사진 속의 홀에서 실제 두상과 마주한 느낌이 든다.(02)735-8449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