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사장은 아무나 하나
본업인 회계업무를 떠나 수년 동안 제조업에 종사한 적이 있다. 배낭과 텐트를 생산하는 종업원 100여명 규모의 중소기업을 설립해 5년여 동안 사장으로 일했다. 첫 직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방적공장이었는데 그곳에서 수년 동안 근무한 경험도 있었고 게다가 회계사였으니 나름 제조업의 생리를 잘 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며，사장은 쉬운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우리나라 소득세법에는 국민이 얻을 수 있는 소득의 종류가 열거돼 있다. 그리고 소득을 보면 그것을 얻을 수 있는 조건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먼저 이자소득이 있다. 이자소득은 돈(자금)이 있어야 생긴다. 돈을 은행과 같은 금융회사에 예치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이자가 생기는 것으로,우선 돈이 없으면 절대로 생기지 않는 소득이다. 배당소득도 주식과 채권 등에 투자함으로써 배당 이익을 받는 것이므로 이자소득과 같이 돈이 먼저 있어야 생긴다. 부동산임대소득은 돈과 운이 합쳐져야(돈+운) 이익이 생기는 소득이다. 돈으로 임대할 부동산에 투자는 하지만 이익은 세입자가 사업을 잘해야(운이 좋아야) 즉,임대료를 제때에 받을 수 있을 때 생기는 것이다.

양도소득도 돈과 운이 함께해야 얻을 수 있다. 부동산을 사더라도 운 좋게 내가 사들인 곳이 개발되거나 그린벨트 등에 묶이지 말아야 비로소 돈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 대부분이 얻는 근로소득은 땀의 대가로 얻는 것으로，땀을 흘리지 않으면 얻을 수가 없다. 따라서 미취업자나 정년이 지나서는 소득이 생기기 힘들다. 퇴직할 때 받는 퇴직소득(연금소득)은 그 땀방울(땀+땀+땀)이 모여 생기는 것으로,근로소득이 있는 사람만이 받을 수 있다. 그 외 복권당첨금，보상금，위로금，상표권이나 특허권 등 지식재산권의 양도로 인한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 기타소득은 운，복，아이디어，기타 재능이 있는 사람들만이 얻을 수 있는 조금은 특수한 소득이다.

그런데 사업소득은 즉,사장으로서 얻는 소득은 위에서 설명한 소득의 구성요소를 모조리 갖추고 있어야 얻을 수 있다. 돈과 운，복，아이디어 그리고 땀방울이 합쳐져야 하며，거기에 열정과 인내심까지 추가돼야 얻을 수 있는 진짜 어려운 소득이다. 그동안 직장생활에 지친 동료나 선후배 및 정년퇴직을 앞둔 선배들이 아주 가볍게 "사업이나 할 계획"이라는 말을 듣곤 했는데 이것은 사업이 진정 무엇인지를 모르는，어떻게 보면 사업을 무시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 중에는 위에서 말한 사업소득의 여러 조건을 갖춘 사람들도 있다. 그럴 경우 성공할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나 역시 사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2011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금년 한 해 동안 수고하신 사장님들을 더욱 격려하고 사랑하는 연말이 되길 소원한다.

권오형 < 한국공인회계사회장 kohcpa@kicp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