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회계산업 선진화 '3박자' 갖춰야
우리나라 회계서비스산업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많은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만큼 큰 성과는 이루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사회적으로 저급한 회계서비스 품질,기업경쟁력 약화,투자자들의 피해,사회 전체적인 불공정 및 비효율성 발생,그리고 이에 따른 국가 경쟁력 약화라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회계업계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지 않는 게 그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회계서비스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외부감사인들이 저가수임 경쟁에 나서며,이로 인해 감사품질이 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더구나 앞으로는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발효에 이은 순차적인 회계시장 개방을 통해 국내외 회계법인의 수임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법률시장의 개방에 따라 소송 리스크도 커질 것이다. 이에 대비해 회계서비스 산업의 선진화가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우선 우리나라 회계감독 제도의 문제점은 권고 위주의 품질감리 제도라는 데 있다. 회계법인들이 실효성이 있는 품질관리 제도를 구축할 요인이 부족하고,질 높은 외부감사인이 선정되도록 유도하는 장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재 시행하는 사후 회계감리 역시 정보 이용자의 피해를 예방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미국의 상장사회계감독위원회(PCAOB)나 영국의 공인회계책임위원회(POB)와 같은 회계감독기구를 중심으로 상장법인에 대한 '감사인 등록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회계법인의 품질관리 실태와 감사품질에 대해 평가하고 이를 공개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상장법인은 분기보고서의 외부검토를 의무화하고,외부감사인의 선임이 경영진과는 독립적으로 이뤄지도록 유인할 필요가 있다. 공시심사감독 체계의 경우 사전예방적 감독체계의 확립과 공익실체 중심의 감독체계를 갖추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둘째, 회계법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회계법인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규제는 완화해야 할 것이다. 우선 소위 '빅4'라고 불리는 대형 회계법인은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 국제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회계법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중소 회계법인의 경우 단순 인적 집합체에서 실질적인 법인체로 전환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법인 설립형태를 다양화하는 등 국제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강소 회계법인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셋째, 회계서비스산업의 선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할 구성원은 회계정보 이용자들이다. 이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여신심사 평가 등 회계정보 이용 절차에 회계 및 감사의 품질 차이를 의무적으로 반영하도록 유인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기업들은 회계정보 이용자에게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해 기업 내에서 활발하게 회계전문가를 양성해야 하며,기업의 공시자료에 핵심 회계전문인력의 교육 내용과 약력 내용을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회계서비스 산업은 사회적 인프라이며 그 핵심은 신뢰성 있는 회계정보의 생산과 활용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지난 10여년에 걸쳐 다른 회계선진국 못지않은 좋은 공시 및 감독체제가 이미 준비돼 있다. 다만 그동안 이런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는 데 노력을 게을리한 부분이 있다.

가장 중요한 회계정보 이용자들인 투자자와 주주들은 높은 품질의 회계서비스를 제공받고 활용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중요한 모니터링 기능을 적극적으로 담당해야 한다. 기업들은 높은 품질의 감사인을 선임해 그 품질에 상응하는 감사 수수료를 기꺼이 지급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감독당국은 시장의 각 주체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담당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합리적 수준의 시장개입을 고려해야 한다.

이창우 < 서울대 경영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