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다음주 2조3000억유로 규모의 새로운 구제금융펀드 창설을 제안키로 했다. 유럽재정안정기금(EFSF)만으로는 재정위기가 유럽 전역으로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국채 매입 등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최근 그리스 이탈리아는 물론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등의 국채금리가 위험수위까지 치닫고 있다.

◆"근본적으로 위기 해결"

EU "2조3000억 유로 '新 구제펀드' 만들자"
1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리 렌 EU 경제통화담당 집행위원은 "EU 집행위원회가 최근 독일 총리 경제자문기구인 '5인의 현인(賢人) 위원회'가 내놓은 새로운 펀드 창설 방안을 다음주 공개적으로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5인 위원회가 제안한 새로운 펀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60%가 넘는 유로존 국가의 부채를 인수함으로써 재정위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라고 WSJ는 설명했다. 특정 국가가 채무를 상환하지 못하면 나머지 국가가 공동으로 채무를 갚는 셈이다.

렌 집행위원은 "유로존의 결속을 강화하는 방안과 함께 새로운 펀드를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펀드가 출범하면 GDP 대비 60%가 넘는 국가의 부채를 일단 사들이게 된다. 해당 국가는 채무규모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제출하고 이행을 점검받아야 한다. 또 구제금융펀드가 인수한 채무는 20~25년 안에 상환해야 한다. 이 펀드는 25년간만 운용한다. WSJ는 "새로운 펀드는 유럽의회와 재정이 취약한 유로존 국가 등으로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펀드 창설 제안이 나온 것은 EFSF 확대가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재정위기가 그리스에서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5인 위원회의 제안에 대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의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유로존이 붕괴되면 독일 경제가 위험에 빠질 것으로 보여 결국 독일이 해결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채권시장 불안 이어져

새로운 대규모 구제금융펀드 제안이 나온 것은 시장 불안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금리는 다시 7%를 넘어섰다. ECB가 전날 이탈리아 국채를 샀다는 소식에 한때 6.9%까지 떨어졌으나 불안감이 확산되며 상승세로 돌아섰다. 프랑스 국채 금리는 전일보다 0.02%포인트 오른 3.70%를 기록했다. 위험도를 나타내는 독일 국채와의 금리 차는 1.92%포인트로 유로존 출범 이후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스페인 국채금리도 한때 6.18%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6.30% 선까지 치솟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한 미국계 은행 트레이더의 말을 인용,"투자자들 대부분이 유로존 채권을 팔고 있다"며 "모두가 비상구를 향해 뛰고 있다"고 표현했다. '트리플A' 등급인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핀란드의 국채까지 내다팔고 있다는 얘기다.

국가 부도위험을 나타내는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도 프랑스는 2.33%포인트,오스트리아는 2.30%포인트까지 올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폴 그리피츠 애버딘자산운용 글로벌 대표는 "유로존 어떤 나라의 국채도 매입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FT는 "오직 ECB만이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채권을 매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희경/이태훈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