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트렌드 읽으려 年 50회 해외출장"
서울 장안동의 봉제업체 성진아이앤씨 전시실에는 갖가지 색과 디자인을 뽐내는 가방 500여종이 늘어서 있다. 캐논 · 니콘 · 올림푸스의 카메라용 가방부터 노스페이스 · 콜롬비아 · 르꼬끄 · 베네통 · 샘소나이트 등의 배낭,애플과 삼성의 휴대폰용 케이스까지 브랜드와 용도도 각양각색이다. 얼핏 보면 가방이라는 것 외엔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박용흠 대표(46)는 "모두 우리가 디자인해서 세상에 나온 '성진의 아이들'"이라며 "30개국의 글로벌 브랜드들에 납품하며 키운 기술력으로 최근 자체 가방 브랜드 '포레스트 그린'을 론칭했다"고 설명했다.

1995년 세워진 성진은 15년간 전자 · 아웃도어 업계의 유명 브랜드 제품을 직접 만들어온 봉제 분야 강소기업이다. 캐논 카메라가방 단일 품목만 생산하는 소규모 업체로 출발했지만,'디자인'을 핵심 경쟁력으로 성장하며 지난해 가방으로만 3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다른 가방 업체들이 대부분 단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에 머물러 있었던 반면,먼저 제품을 디자인하고 역으로 거래처에 생산을 제안하는 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을 업계에 처음 도입하는 등 혁신을 시도해온 게 성장 비결이다.

박 대표는 "디자인 트렌드를 읽기 위해 10년간 비행기를 550여번 탔을 정도로 해외 전시회를 많이 돌았다"며 "본사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디자인실에서 보내며 디자인 개발 과정을 총괄한다"고 말했다. 서울 사옥의 디자인실에는 4명의 가방 전문 디자이너가 상주한다. 이들이 박 대표의 지휘 아래 디자인을 설계하고 거래처의 승인을 받으면,중국 직영 공장에서 이를 제품으로 만든다. 이 같은 '디자인 중심 철학'이 글로벌 업체들로부터 잇달아 러브콜을 받은 원동력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16일 론칭한 '포레스트 그린'은 이 같은 디자인 노하우를 담아 4년 전부터 기획한 자체 브랜드다. '친환경'과 '기능성'을 컨셉트로 하는 정보기술(IT) 제품 케이스와 배낭 등이 주 제품이다. 박 대표는 "태블릿PC용 케이스는 어학용,사무용,동영상 감상용 등 사용 목적에 최적화한 디자인으로 만들고,배낭은 재활용 원단 등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 차별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이미 자체 쇼핑몰은 물론 롯데백화점 이마트 코스트코 등 대형 유통점과 애플 전문 스토어 등과 계약해 국내 유통망을 구축했다.

이 회사는 최근 생산능력 확장을 위해 베트남에서 직원 1300명 규모의 공장을 인수,가동을 시작하는 한편 현지 2공장 증설도 준비 중이다. 올 매출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자체 브랜드와 신규 공장 효과로 내년부터는 6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 대표는 "'큰 회사에 납품하지 못하면 먹고 살기 어렵다'는 OEM 봉제업계의 고정관념을 깨고 싶다"며 "5년 내 매출 1000억원 고지를 달성하고 업계를 선도하는 브랜드로 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