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식사하셨습니까?
의식주는 인류의 중요한 기본 요소지만 한국 문화에서 '식사'라는 행위는 특히 삶에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아홉 번째 부임지로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모두 나에게 "식사하셨습니까?"라고 물었다. 처음에는 식사를 했냐고 묻는 것인지 혹은 구체적으로 메뉴를 묻는 것인지 고민하다 대답할 타이밍을 놓친 적이 많았다. 지금은 실제 상황과는 상관없이 간단하게 대답하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됐으나,식사를 했는지가 인사로 사용될 만큼 중요하게 인식된다는 것이 흥미롭다.

식사의 메뉴가 모임의 중심이 될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그리고 '비가 오면 파전''가을에는 전어'와 같은 날씨나 계절 또는 분위기에 따른 음식의 선정과 '치킨에 맥주''감자탕에 소주''삼합에 막걸리' 같은 음식과 술의 궁합 등을 배웠다. 처음에는 무슨 공식처럼 외우기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적용시키다 보니 저절로 외워졌고,역시 맞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와 집사람은 한국요리를 예전부터 좋아했고,특히 매운 양념을 좋아해 한국에서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포장마차부터 지방의 특색 있는 음식,고급 한정식까지 여러 가지 맛을 음미했다. 광장시장 노량진수산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먹는 즐거움뿐 아니라 그 음식과 관련된 에너지도 느끼게 된다.

지방에 있는 소니 관계사를 방문했을 때 울산의 고래고기,부산의 밀면,광주의 김치,속초와 같이 해산물이 풍부한 지방의 특산물을 맛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나는 외국인에게 생소할 수 있는 청국장 보신탕도 매우 좋아하고 가족과도 자주 먹으러 다닌다. 유일하게 아직 익숙해지지 못한 것이 삼합으로 익숙해질 때까지 도전할 생각이다. 기회가 있을 때는 사양하지 않으며,최근에는 그 맛을 조금 알게 된 것 같아 내심 기쁘다.

최근에 나를 가장 강력하게 유혹하는 것은 평양냉면이다. 평양냉면의 첫 맛은 '싱겁다'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미묘하고 섬세한 맛의 깊이를 깨닫게 됐다. 바로 면 자체의 맛을 돋보이게 하는 절묘한 육수의 맛이다. 맛과 향이 강하고 양념이 많이 들어가는 다른 한국음식과의 차별성이 있다. 게다가 모두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서민적 음식이라 더 좋다.

평양냉면의 참 맛을 알고 나서,나 스스로 한국에 대한 이해가 제2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화려하고 적극적인 문화 속에 내재돼 있는 전통적인 섬세함.이것이 한류와 경제 성장으로 화려해 보이는 한국의 근원이 되는 힘이 아닐까 싶다. 이제 한국에 온 지 1년 남짓밖에 되지 않은 외국인으로서 언급하기 조심스럽긴 하지만 화려한 사물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내 좌우명과 상당히 흡사해 더 놀라운 발견이다.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이 더해지니 평양냉면의 맛이 더 각별해진다.

이토키 기미히로 < 소니코리아 사장 itoki@sony.co.kr >